지난달 15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이 올해 수상자로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건축가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Diébédo Francis Kéré)를 선정했다. 1979년에 첫 수상자(필립 존슨)를 배출한 이래로 아프리카 출신의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역대 프리츠커 상 수상자들을 보면 백인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뒤를 일본 남성 건축가들이 잇고 있다. 여성 건축가는 2004년에 자하 하디드(우리에게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잘 알려진 건축가)가 처음으로 받았을 만큼 보수적인 상이다. (여기에서 역대 수상자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고, 2011년에 작성되기는 했지만 이 글에서 프리츠커의 인종과 젠더 편중에 관해 이야기했다.)

백인 남성들이 이 상을 압도적으로 받았다는 사실에서 선정 위원회가 인종, 젠더에 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단순한 선정 위원들의 개인적 편견이라기보다는 좀 더 구조적인 원인을 가진 경우가 많다. 즉, 과거의 특정 사고방식이 시스템 내에 구조적으로 코드화 되어서 개인의 각성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프리츠커상의 경우 이제까지 "인스타그램에 등장할 만한" 건물들을 만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급 건축가들(starchitects, star+architects)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눈에 띄는 화려한 건물들을 만들 수 있는 나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런 건물을, 그것도 꾸준히 지어낼 만큼의 돈과 관심, 유명한 건축가를 끌어올 만한 인맥을 갖춘 나라들은 꼽아보면 결국 미국, 영국, 일본 같은 서구 선진국들일 수밖에 없다.

아래 수상자 통계를 보면 결국 돈 많은 선진국들의 잔치임을 알 수 있다.

2011년 까지의 프리츠커 수상자 국가별 통계

물론 서구 선진국의 스타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멋지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퐁피두 센터,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디즈니 콘서트 홀, 필립 존슨이 설계한 시그램 빌딩 같은 곳에 가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들은 프리츠커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문제는 그들이 만든 건물의 가치다. 파리와 L.A., 뉴욕처럼 돈과 관광객이 몰리는 최고의 도시에 있는 랜드마크 같은 건물이라면 당연히 그 도시와 건물 주변 상권의 환영을 받겠지만, 그런 건물들이 세계 최고의 건축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판단이다. 그 건물들이 건물주와 도시에 돈을 벌어주는 것과 수십,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인류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느냐는 분명히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Burkina Institute of Technology (2020), Koudougou, Burkina Faso

2022년 프리츠커상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수상자인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가 만들어온 건물들은 그 규모나 위치, 용도에서 전통적인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그의 건물들은 아름답지만 작고, 서구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마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케레는 학교 건물에 관심이 많다.

케레는 1965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도에서 위치를 찾기도 힘들어하는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가난하고 교육률이 떨어지는 지역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이장(chief, 추장)이었던 케레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린 케레를 멀리 떨어진 도시로 보내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그 학교라는 곳이 환기도 안되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시멘트 블록 건물이었다고 한다. 케레는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학교 건물을 이것보다는 낫게 지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의 생각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지금까지도 그를 이끄는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2013년 뉴욕에서 열린 TED 행사에서 케레가 자신의 건물을 설명하는 이 영상은 꼭 한번 보시길 권한다.

프리츠커상이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를 선택한 것은 아프리카 건축이라는 지역적 다양성(이것만 고려했다면 가나 출신의 스타 건축가 데이빗 애드제이를 선택했을 거다) 외에도 건축물이 가지는 가치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돈 많은 관광객을 끌어올 수 있는 건물과 제3세계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환경과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건물 중 어느 건물이 인류의 미래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해 줄까? 다시 말하지만 이건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다양성의 진정한 가치

앞서 쓴 글에서 소개한 두 명의 언론인 피엔 황, 아이샤 라스코가 메이저 언론사에서 자신의 이름과 억양이라는 민족성(ethnicity)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사가 인종적 평등(racial equality)을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가치를 아는 것과 나와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배려'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의 경우 다양성이 조직과 사회에 실질적인 이익임을 아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내가 '베푼다'는 태도이고, 이 경우 내가 힘들 때, 혹은 다수가 원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건축 디자인이 프리츠커상이 그동안 추구해온 가치와 다르다는 것을 잘 아는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는 이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프리츠커상이 자신을 '배려'했다고 생각할까? 아래 영상을 보면 케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건물을 지으면서 했던 경험은 내가 서구 국가에 건물을 설계할 때 사용된다. (서구에서 항상)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에서 설계를 하는 거다.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것들이 서구에서 설계할 때 훨씬 더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게 해 준다."

케레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설명하는 짧은 영상들이 여기에 모여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대륙, 서로 다른 문화를 오가는 것은 주류(mainstream)를 따르지 않고 변화(transform)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라는 케레의 말은 그동안 서구 모더니즘 건축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스타 건축가를 찾아온 프리츠커가 케레를 통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았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음식

글을 끝내기 전에 음식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21세기 미국의 대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들이 되었지만, 원래 미국은 음식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인 문화였다. 지금은 피자, 스파게티 같은 음식이 이탈리아 밖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미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프랑스 음식에 대한 동경은 과거부터 존재했지만, 미국인들이 초밥(스시)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이나 남미 음식 같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식을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럼 과거에는 어땠을까?

2016년에 나온 'A Square Meal: A Culinary History of the Great Depression'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음식에 대한 생각은 과거 영국에서 비롯된 아주 보수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반 미국인들이 먹던 음식은 향신료(flavor)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밋밋한(bland) 것들이었기 때문에 미국 대륙에 대기근에 이은 대공황이 닥쳤을 때 만약 미국이 남미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남유럽 문화에서 먹는 것처럼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를 사용했다면 훨씬 견디기 쉬웠을 거라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이 책은 대공황 때 미국인들이 먹었던 끔찍하게 맛없는 음식을 설명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미국인들이 식문화가 발달한 남미, 남유럽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폐쇄성이었다. 이들 문화를 영미권의 문화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서는 문화적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맵거나 향이 강한 음식을 흥분제(stimulants)로 여겼고, 이런 음식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향이 강한 음식은 카페인이나 알코올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 취급했고, 그런 물질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코카인과 헤로인 같은 (중독성) 물질들이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올리브를 기피했고, 마늘과 식초가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 피클도 기피했다. 물론 지금의 미국인들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갖고 있고, 다양한 문화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지위 상징이 되었다.

이들에게 음식 문화의 다양성은 '배려'가 아니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요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