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024년 대통령 선거를 향한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2020년 대선에서 패하지 않았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계속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는 다음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사실상 밝혔고, 공식적으로 이를 선언하는 시점을 조율 중에 있다. 그의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도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경쟁과 계산

펜스는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이 승리했다는 선거 결과를 의회에서 공식 승인했다는 이유로 트럼프의 적이 되었다. 부통령이 상원의장을 겸하는 미국 의회 제도에 따라 진행한 절차이고, 각 주에서 올라온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부통령에게 없기 때문에 요식 행위에 불과한 절차였지만 트럼프는 "펜스가 선거 결과를 거부할 수 있었다"고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법률가들은 트럼프의 주장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펜스 역시 법률 고문들과 상의 후에 결정한 일이었다.) 펜스가 의회에서 트럼프 패배를 공식 승인한 것이 2021년 1월 6일이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모아 이 절차를 방해하려 했고, 그 결과 우리가 잘 아는 의회 난입, 폭동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상원에서는 1월 6일 조사 청문회를 진행했고, 여름을 보낸 후 9월에 다시 청문회를 속개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하원위원회는 온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청문회를 저녁 황금시간대(prime time)에 진행하면서 흥행에 성공했고, 그 결과 트럼프라는 개인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책 때문에 지지했던 공화당 지지자들과 중도층이 끊임없이 나오는 증언에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을 무려 2년 넘게 앞두고 일찌감치 출마선언을 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변화로 인한 지지율 출혈을 막으려는 것이다. 대선후보가 되면 의회의 조사를 자신의 출마를 막으려는 정치적 행위로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출마를 선언할 경우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반트럼프 진영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지지 31%, 반대 60%)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32%, 60%)과 차이가 없다. 원래 미국의 여당은 대통령 취임 후 2년 만에 치러지는 중간 선거에서 패하는 일이 흔하지만, 바이든의 지지율은 트럼프가 임기 중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했을 때보다 더 낮기 때문에 오는 11월의 선거는 민주당이 참패한다는 게 (공화당, 민주당 모두의) 전망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후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수적인 판결을 예고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분노한 여성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집해서 공화당을 선거에서 응징하겠다는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트럼프까지 다음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면 이미 붙은 불에 기름을 붓는 셈이다.

이를 잘 아는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가 출마선언을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만, 트럼프는 당의 전략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고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화당은 여전히 트럼프의 당이다. 앞서 말한 하원 조사위원회를 이끄는 리즈 체니(Liz Cheney) 하원의원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트럼프의 생각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당이 트럼프에 끌려다니는 걸 싫어하는 의원들은 많지만 (트럼프가 2016년 당내 경선에 승리하기 전까지는 단결해서 그에 저항했다) 이들은 절대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트럼프의 공격을 받는 순간 자신의 지역구에 사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리즈 체니 의원은 하원의원직을 사실상 포기하고 싸우는 중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다른 공화당 의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공화당 내부에서는 별다른 방법은 없고 그저 트럼프가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워낙 종교적인 열정으로 그에게 매달리기 때문에 그들을 트럼프에게서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종교인(보수 기독교)이라는 것도 그런 성향을 설명해준다.

그런 공화당에 대안이 나타났다.

트럼프가 없는 트럼프주의

미국에서 트럼프주의(Trumpism)로 완전히 돌아서지 않은 극소수의 보수 매체 중 하나인 내셔널리뷰(National Review)는 요즘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Ron DeSantis)에 관한 기사들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제목들을 보면 "론 드산티스와 새로운 공화당(Ron DeSantis and the New Republican Party)," "아니, 드산티스는 트럼프보다 더 나쁜 사람이 아니다 (‘No, DeSantis Isn’t Worse Than Trump’)," "뉴요커가 실수로 론 드산티스를 돋보이게 만드는 기사를 썼다(The New Yorker Accidentally Makes Ron DeSantis Look Awesome)," "플로리다는 헝가리가 아니며, 론 드산티스는 빅터 오르반이 아니다(Florida Is Not Hungary, and Ron DeSantis Is Not Viktor Orbán)" 같은 것들로, 드산티스에 대한 희망적인 기사는 물론, 그를 공격하는 진보 언론인들의 글에 반박하며 드산티스를 옹호하는 기사들이다.

정통 보수에 가까운 내셔널리뷰가 드산티스 주지사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트럼프가 없는 트럼프주의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좀 더 적나라한 표현을 빌자면 드산티스는 "두뇌가 있는 트럼프(as Trump with a brain)"라서 그렇다. 다시 말해, 드산티스는 보수가 트럼프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동시에 트럼프가 보여준 황당한 모습이나 무식함, 무능력함, 그리고 보수의 가치를 훼손하는 태도는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폴리티코 매거진의 한 칼럼니스트(이 사람은 내셔널리뷰에도 글을 쓴다)는 "진보 진영은 드산티스의 등장을 반겨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적어도 트럼프처럼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허무는 정치인이 아니라면 트럼프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사람인데, 트럼프와 똑같이 국가 제도를 허무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드산티스가 트럼프에 비해 "정상적인(normal)"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보다 비정상적인 사람을 미국 정치인들 중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단지 그가 트럼프 보다 정상적이라는 건 혜성처럼 나타난 드산티스의 인기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핵심은 그가 트럼프주의를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흡수하고 체화했으면서도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트럼프파 정치인의 선두주라는 데 있다.

전직 배우나 프로 레슬러도 대중적 호소력만 있으면 대통령이 되고 주지사가 되는 곳이 미국이지만 그런 나라에서도 유권자들이 연방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수준, 혹은 자격조건은 존재한다. 기성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전국을 도는 경선이라는 무시무시한 시험대를 통과해야 하지만, 그 단계에 가기에 앞서 사람들이 눈여겨 보고 "저 정도면 전국 수준의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젊은 무명의 버락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주의회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알아봤다고 한다. 좋은 학력과 뛰어난 말솜씨, 그리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매력적인 외모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과 경쟁하다가 현재 교통부 장관으로 일하는 피트 부테제지는 정치적인 경험은 작은 도시의 시장을 역임한 정도였지만 아이비리그에서 공부하고, 군복무 중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그런 경력의 정치인이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언변을 자랑하는데 성소수자이기까지 하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기에 그만큼 완벽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트럼프의 합성 버전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예일 대학교(학부)와 하버드 대학교(법대)를 졸업한 "더블 아이비리그"인데, 군에 입대해서 해군의 군법무관(JAG)으로 일하면서 특수부대인 네이비씰(SEAL)의 일원으로 이라크의 전쟁터를 누빈 사람이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일기예보를 전하는 일을 하던 여성과 결혼해서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어서 "마치 영화사에서 캐스팅해서 만들어 놓은 듯한" 1980년대 미국 보수의 이상형 같은 정치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드산티스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은 그의 화려한 학력과 광고사진처럼 보이는 가족사진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보너스에 불과할 뿐, 그들을 매료시킨 것은 드산티스가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워하는) 앤서니 파우치와 미디어에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트럼프처럼 조롱을 당하기는 커녕 그들을 이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마치 트럼프가 가진 요소를 모두 녹여내고 거기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 더욱 강한 합성 버전(synthetic version)으로 탄생시킨 것 같은 정치인이 바로 론 드산티스다. 그는 트럼프를 밀어내고 2024년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인기없는 민주당 정권을 물리치고 다시 한 번 백악관을 공화당의 품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그런데 미국 정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플로리다 맨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