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에는 패턴이 있다. 한국에 비하면 워낙 변화가 느린 나라이기도하고 (그보다는 한국이 변화가 많고 빠르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양당제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유권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쉬워진 탓도 있다. 한국의 경우는 서구의 민주주의를 가져와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독재를 겪었고, 이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틀을 깨고 전례를 부숴야 했지만 그럴 필요가 거의 없는 나라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예전에 했던 방식을 반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같은 일이 두세 번 반복되면 그걸 중심으로 특정한 삶의 방식(way of life)이 형성되는데, 사람들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걸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Nicolai Berntsen on Unsplash)

그렇게 형성된 패턴 중 하나가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이 패배한다"는 거다. 여기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중간선거(midterm elections)라는 건 대통령 임기 4년 중 2년째에 치러지는 선거를 말한다. 물론 대통령이 이 선거와 무관하지만, 대통령이 속한 당의 패배는 대통령의 실적에 대한 평가로 여겨지기 때문에 남은 임기 2년 동안 추진해야 할 어젠다를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여론, mandate)이 생기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된다.

더 중요한 건 의회의 뒷받침이 없이 대통령이 혼자 추진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따라서 대통령은 자신의 당이 의회를 장악해야 하려는 일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중력(Gravity)

여기에서 여당이 중간선거에 패배한다는 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특정 대통령이 당선되던 해에 의회의 구도는 제각각이겠지만 (예를 들어 공화당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하원은 민주당, 상원은 공화당이 과반수를 차지했을 수 있다) 그 구도를 더 유리하게 바꾸거나, 이미 유리한 구도였으면 지킬 수 있으면 성공한 거다.

그런데 미국 정치의 패턴을 보면 집권당은 중간선거에서 거의 예외 없이 패한다. 너무나 분명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이는 중력처럼 자연의 법칙이라는 말까지 있다. 그래서 집권당이 중간선거에 승리하려는 것은 중력에 도전하는(defying gravity) 일이라고 한다.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일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가령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했을 때 공화당은 의회에서 상하 양원을 모두 휩쓸었다. 하지만 2년 후인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을 되찾았다. 따라서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졌다"라고 하는 거다.

2016년 트럼프의 승리는 블루칼라 백인들이 민주당을 심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미지 출처: CNN)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의 경우도 그렇다. 당시 민주당은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첫 임기 중간선거(2010년) 때 민주당은 하원을 잃었고, 오바마 두 번째 임기 중간선거(2012년) 때 상원마저 빼앗겼다. 오바마는 8년 임기 마지막 2년을 그렇게 의회의 지원사격 없이 보내야 했다.

2000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도 마찬가지로 상하 양원을 모두 공화당이 차지한 채 출발했지만, 두 번째 임기 중간선거인 2006년에는 민주당에 상하 양원을 모두 빼앗겼다. 1994년에 백악관에 들어선 민주당의 빌 클린턴도 자기 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차지하며 시작했지만 중간선거에서 결국 모두 잃고 공화당 의원들에 끌려다니며 임기를 끝냈다. 패턴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2020년에 당선된 조 바이든의 경우도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차지하며 출발했다면, 그의 임기 2년 차에 실시되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패하는 건 필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 물가가 급등하는 바람에 "연봉에서 한 달치 월급이 날아갔다"라고 하는 상황에서 집권당이 중간 선거에 승리하는 건 꿈도 꾸기 힘들다.

의외의 상황  

하지만 다음 주에 있을 바이든의 중간선거에서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지난여름의 일이다. 임신 중지를 여성의 권리로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연방 대법원이 뒤집는 일이 있은 직후였다.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오터레터에서 '선을 넘은 대법원' 네 편의 글로 설명했으니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공화당을 심판하자는 성난 여론은 들불처럼 퍼졌고, 사실상 중간선거를 포기하고 있던 민주당은 이런 상황이면 중력을 거슬러 중간선거에 승리할 수 있겠다는 당돌한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럼 여기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우선 현재 연방 의회가 상하 양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민주당이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크고 탐스러운 당근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보수화, 정치화한 연방 대법원의 결정에 맡겨두지 않고 아예 연방법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가장 뜨거운 이슈를 추진력으로 삼아 집권당 패배라는 중력권을 벗어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미지 출처: Earth How)

조 바이든은 2020년 민주당 경선에서 인기 후보가 아니었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였던 오바마의 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선 후보들에게 끌려다니며 힘겨운 싸움을 하다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면서 대선 후보가 되었고, 개인적인 카리스마나 인기, 혹은 특별한 메시지 없이 트럼프에 질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는 것이 대부분의 분석이다.

그리고 그런 힘겨운 승리는 당선 후에도 낮은 지지율로 이어졌다.  출발부터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었는데 물가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솟고 있으니 바이든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고, 사실상 포기했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많은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하는 판결을 내렸으니 (미국인의 다수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바이든과 민주당으로서는 호재였다.

문제는 과연 민주당이 임신 중지 권리를 정말로 법제화할 수 있느냐다. 사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바로 다음 달인 7월 여성 건강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를 시도했다. 이미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화당 전원이 반대해도 통과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50:50으로 갈라져서 부통령(상원의장을 겸한다)의 표까지 더하면 간신히 과반이 되는 상원에서는 애초에 통과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한 것은 의지의 표명이고, 오늘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하원뿐 아니라 상원에서도 민주당을 선택해준다면 이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맛보기' 이상이 아니었다. 여론이 뜨겁던 7월의 분위기에서는 그런 시도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게 되면 정말로 임신 중지의 법제화가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상원에서는 다수당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필리버스터(filibuster) 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민주당이 상원을 가져간다고 해도 공화당이 결사반대할 게 분명한 임신 중지 연방법 제정을 놔둘 리 없다. 그래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하는 이유는 만약 민주당이 상원의 60%, 즉 60석을 가져간다면 필리버스터 룰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52석만 확보해도 가능할 수 있다. 현재 두 명의 민주당 의원이 반대하고 있어서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 둘의 표를 무력화할 수 있는 52석이 되면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룰 자체를 폐기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를 며칠 앞둔 지금 상원마저 공화당에 넘어갈 위험에 처해있다.

하원은 더더욱 참담하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하원을 잃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민주당이 걱정하는 건 하원을 잃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크게 무너져서 2024년에 다시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는 것이다. 즉, 이미 하원은 패했고 지금부터는 피해의 규모를 줄이는(damage control) 데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공화당의 반격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