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봇(pivot) 비즈니스, 특히 스타트업에서 업계의 변화나 소비자의 선호, 혹은 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생겼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의 전략을 바꾸는 일. 스케이팅에서 '하드 피봇(hard pivot)'은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 방향을 급히, 과감하게 바꾸는 기술을 말한다.

올해 들어 넷플릭스는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구독자 수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발표가 4월에 나왔고, 5월에는 직원 150명을 해고했고, 한 때 700달러 선을 넘보던 주가는 18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는 240달러선까지 회복한 상태다.) 넷플릭스가 유일한 플레이어이던 시장에 디즈니, 아마존, 애플 같은 초대형 경쟁자들이 진입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위기가 모두 외적인 요인에 기인한 것이고 업계 1위였던 넷플릭스의 판단과 결정이 모두 옳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에 대해서는 '토끼의 실수'에서 자세히 이야기했다.)

넷플릭스 경영진은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PR작업에도 착수했다. 가령 공동 CEO인 테드 사란도스가 뉴욕타임즈와 인터뷰를 한 게 그렇다. 사란도스는 현재의 경영 노선에 자신감을 갖고 있고 이는 기사 전체에 (이 기사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사란도스의 자신감'이라는 글을 참고) 잘 드러난다.

넷플릭스의 창업자이자 CEO 리드 헤이스팅스(왼쪽)와 공동 CEO 테드 사란도스 (이미지 출처: 데드라인)

하지만 넷플릭스의 경영진이 아무리 자신감이 있어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따라서 넷플릭스는 몇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하나는 그동안 넷플릭스가 방치(라기보다는 권유)해왔던 계정 공유의 단속이고, 다른 하나는 광고가 들어가는 '저가 요금제'의 출시다. 업계에서는 특히 후자를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이다. 왜냐하면 구독료만 내면 광고 없이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넷플릭스의 가장 강력한 셀링포인트(selling point, 판매 소구점)를 넘어 정체성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랬던 넷플릭스가 광고를 통한 수익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미국 시장에는 광고를 보여주고 무료, 혹은 저가로 스트리밍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서비스가 많이 나와있고, 넷플릭스의 최대 경쟁자인 디즈니 플러스 역시 (넷플릭스 보다 빠른) 올해 12월에 광고가 들어가는 월 8달러짜리 저가 요금제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넷플릭스의 변화에 유독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광고/구독 모델의 정체성을 가진 서비스가 구독자들의 반발 없이, 혹은 브랜드의 손상 없이 비즈니스 모델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느냐를 보고 싶은 것이다.

2011년 넷플릭스가 DVD 부문을 분리하려다 실패한 브랜드 '퀵스터'

애초에 DVD 대여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주력 서비스를 스트리밍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레거시 서비스인 DVD 대여를 '퀵스터(Quikster)'라는 브랜드로 분리하려다가 사용자들의 거센 항의와 조롱에 부딪혀 곧바로 포기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들의 동의나 충분한 이해 없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어느 기업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넷플릭스는 어떻게 광고 모델을 도입하려는 걸까?

마이크로소프트를 선택한 이유

지난달 넷플릭스는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들어갈 광고 시스템을 구축할 기업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광고를?'하고 갸우뚱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이지만 인터넷 광고로 유명한 기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광고 시장은 구글과 메타가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업들도 이들이겠지만 넷플릭스는 이 둘이 아닌 마이크로소프트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다소 의외의 선택은 넷플릭스가 광고 모델 도입에 거는 기대의 크기를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성장의 위기에 부딪혀서 황급히 저가 요금제를 꺼내 든 게 아니다. 넷플릭스는 몇 년 전부터 이런 모델을 구상하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이미 10년 전에 '크리클(Crickle)'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내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코드네임이 미국에서 광고를 보여주는 무료 스트리밍으로 유명한 서비스 크래클(Crackle)의 이름을 바꾼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넷플릭스가 광고를 통한 저가 요금제를 만들면 콘텐츠 라이선스 협상 등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확인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당시 넷플릭스는 이를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광고/무료 스트리밍 서비스가 많은데 그들과 섞이면 넷플릭스의 브랜드 차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였고, 온라인 광고의 거인들(구글, 페이스북)과 직접 경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다른 이유였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이유는 이번 결정에도 적용된다.

광고 관련한 경험과 기술이 전무한 넷플릭스는 광고 모델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후 이를 도와줄 파트너를 구하기 시작했고,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덤벼든 기업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외에도 구글, 로쿠(Roku), 컴캐스트(NBC유니버설)이 있었다. 특히 컴캐스트는 칼라마리(Calamari,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Squid Game을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라는 코드네임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열심을 냈지만 미디어 기업으로서는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바를 수행하면서 수익을 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기권했다. 구글의 경우 기술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넷플릭스의 요구 조건에 따르면 자신들이 선택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럼 넷플릭스는 무엇을 바랐던 것이고, 광고 경험이 많지 않은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 그 요구에 부응했을까? 월스트리트저널의 취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자사의 광고 판매 비즈니스는 바닥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작업에 함께 할 파트너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는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경쟁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작업을 의미한다. 구글로서는 자사의 기술까지 제공하면 자신의 온라인 광고시장 점유율을 뜯어갈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을 도와줄 마음이 없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광고로 하드 피봇

창사 이래 광고를 멀리해왔던 넷플릭스는 광고 모델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하기로 한 것이다. 크래클이나 투비, 훌루처럼 콘텐츠 시청을 방해하는, 시청자들이 싫어도 봐야 하는 광고를 일방적으로 쏟아내어 반감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는 완전히 새로운 광고 모델을 제작하겠다는 게 넷플릭스의 포부다.

하지만 이런 계획에는 단순히 시청자의 경험을 해치지 않으려는 것 이상의 야심이 들어있다. 관련 협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궁극적으로 1,000 뷰 당 80달러를 받고 싶어 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온라인 광고를 넘어 NFL 중계 때 들어가는 광고 수준이다. 가장 효과적인 광고 서비스를 제공해서 이제까지 어떤 온라인 광고도 받아본 적이 없는 최고가의 광고를 팔겠다는 것이다. 광고 없는 유료 스트리밍으로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면 광고가 들어간 모델에서도 최고의 기업이 되려는 야심이다. 넷플릭스의 백일몽만도 아니다. 한 분석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광고를 시작하면 2025년부터 광고에서 12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5천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하고, 웰스파고 은행에 따르면 광고 매출이 70억 달러(9조 1천억 원)까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럼 과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넷플릭스의 야심을 실현시켜 줄 능력이 있을까? 당장 모든 걸 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관련 기술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6월에 AT&T의 광고 기술부문인 잰더(Xandr)를 인수하는 협상을 마무리했다. 잰더는 프로그래매틱(programmatic)이라 불리는 디지털 광고 기술을 가진 회사다. 프로그래매틱 기술은 광고의 구매자와 판매자를 자동으로 연결해주는 것으로, 잠재적 구매자와 광고를 매칭해주는 어드레서블(addressable) 광고 기술과 함께 디지털 광고의 핵심.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3월 기준으로) 지난 9개월 동안 검색과 뉴스를 통한 광고 부문에서 87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구글, 메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작은 실적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트리밍 비즈니스를 하려는 계획이 없다는 사실이다. 구글은 유튜브를 통해서 광고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컴캐스트는 그 자체로 미디어 기업이며, 로쿠는 동영상 플랫폼 기업으로 넷플릭스와 영역이 겹치는데 마이크로소프트만큼은 '중립적'인 테크 기업이다. 게다가 CEO인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가 넷플릭스와의 딜을 성사시키는 데 직접 관여했다고 알려졌을 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관심과 야심만으로 사업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광고는 첨단 기술 외에도 판매(세일즈) 부문의 역량이 중요한데 넷플릭스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장 이 팀부터 꾸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두 기업의 경영진은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역량에서 업계의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넷플릭스의 방향 전환이 과격해 보여도 사람들이 기대를 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