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기업 이름을 바꾼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많은 새로운 이름에 대한 추측이 쏟아지면서 새로운 이름에 대한 베팅도 시작되었다. 호라이즌(Horizon), 커넥트(Connect)처럼 현재 페이스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가장 쉬운 답이겠지만, 현재 1위를 달리는 이름은 Virtuel이다. 영어 단어 virtual(가상)의 프랑스어에 해당하지만, 실리콘밸리 기업이 굳이 프랑스어를 쓸지는 모르겠다.

들어본 예측 중에서 가장 솔깃한 건 '메타(Meta)'다. 마크 저커버그가 메타버스(metaverse)를 페이스북의 미래로 내놓았기 때문에 단어의 선택이 논리적인 건 당연하지만, 흥미로운 건 그 근거다. 현재 Meta.com도메인으로 가면 Meta.org로 이동한다. 두 도메인의 소유주가 같다는 의미. 그런데 Meta.org는 저커버그가 아내 프리실라 챈과 함께 설립한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의 프로젝트로 소개되어있다. 즉, 이미 저커버그가 Meta.com, Meta.org 도메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회사의 도메인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호라이즌, 커넥트 같은 도메인은 소유주가 따로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정확한 이름은 오는 28일에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브랜드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페이스북이 리브랜딩(re-branding)을 하는 이유다. 우리가 흔히 "페이스북"이라고 할 때는 소셜미디어 서비스의 명칭이지만, 페이스북(Facebook, Inc.)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오큘러스 등의 많은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명칭이기도 하다. 저커버그가 바꾸려는 (것으로 알려진) 건 서비스명이 아닌, 모기업의 명칭이다.

기업 로고(왼쪽)와 서비스 로고

이런 예는 이미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이 2015년에 기업구조를 개편하면서 만든 홀딩회사인 알파벳(Alphabet)이다. 구글을 비롯해 딥마인드, 웨이모, 칼리코 등의 기업들이 알파벳 아래에 모여있지만, 어차피 매출의 대부분은 구글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파벳을 그냥 "구글"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이 기업명을 새롭게 만든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페이스북"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높다.

인간방패(Human Shield)

그렇다면 왜 굳이 이름을 바꾸는 걸까? 이 소식을 처음 전한 매체(The Verge)의 기사에 따르면 기업의 정체성을 소셜미디어에서 벗어나 '메타버스 컴퍼니'로 바꾸려는 의도일 수 있고, 근래 들어 기업의 이미지와 대중적 신뢰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NYU 스턴(Stern) 비즈니스 스쿨스캇 갤로웨이(Scott Galloway)

하지만 뉴욕대학교(NYU) 경영학 교수 스캇 갤로웨이의 해석은 좀 더 시니컬하다. 이번 리브랜딩 작업은 CEO 저커버그가 골치아픈 문제에서 손을 떼기 위해 만드는 인간방패(human shield)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서비스)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페이스북(기업)의 CEO인 저커버그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고, 언론과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데, 만약 전혀 다른 이름의 홀딩회사가 만들어지고 자신이 그 회사의 CEO가 되면 페이스북 서비스를 총괄하는 자회사에는 새로운 CEO가 생길 것이고 앞으로 페이스북에 생기는 모든 문제는 그 사람이 답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커버그 자신은 골치 아픈 소셜미디어에서 손을 떼고 미래 개척자라는 이미지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면 된다. (갤로웨이는 지난 7월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의 CEO 자리에서 내려올 때도 워싱턴의 반독점법 위반 심사가 본격화되면서 정치인, 변호사들과 씨름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서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공개된 내부문건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테크기업들보다 더 뻔뻔한 방식으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기업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이다. 한국에는 최근 얀센 코로나19 백신으로도 유명해졌지만, 타이레놀, 지르텍 같은 히트 약품과 안과 용품인 아큐브, 피부 용품인 뉴트로지나, 아비노, 클린앤클리어 등의 다양한 상품과 브랜드를 가진 다국적 제약회사다.

하지만 이 회사를 대표하는 상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존슨즈 베이비(Johnson's Baby) 브랜드로 판매하는 베이비 파우더. 존슨앤존슨 베이비 파우더는 1886년에 로버트 우드 존슨(Robert Wood Johnson)이 설립한 이 회사가 만든 초창기 히트상품 중 하나로, 주원료는 엄밀하게 말하면 돌가루다. 미국에서는 탈쿰(talcum), 혹은 줄여서 탈크(talc)라고 부르는 이 광물은 아주 쉽게 부서지는 활석()이다. 땀이 나서 피부가 짓무를 때 활석을 잘게 부수어 만든 파우더를 뿌리면 피부가 뽀송뽀송해지는 효과가 있는데, 존슨앤존슨에서는 1893년부터 이 파우더에 좋은 향을 넣어서 베이비 파우더로 팔았고, 이 회사를 대표하는 상품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광산에서 채취하는 활석은 석면(石綿, asbestos)과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다. 석면은 1군 발암물질로, 호흡을 통해 몸에 들어오면 수십 년의 잠복기를 거쳐 각종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존슨앤존슨이 자신들이 사들이는 활석에 석면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1950년대로, 석면이 암을 유발한다는 것이 알려진 후였다. 이때부터 길고 지루한 진실싸움이 시작되었다. 존슨앤존슨은 자신들이 파는 베이비 파우더에는 석면이 없다고 했다가 연구 결과 석면이 발견되자 불리한 연구를 숨기고, 폐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관한 가장 철저한 탐사보도는 2018년에 로이터에서 나온 'Powder Keg' 기사다. 탐사보도의 정석과 같은 훌륭한 기사이니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존슨앤존슨의 행동이 페이스북의 내부고발이 나온 정황과 비슷하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담배회사든, 자동차회사든 기업들은 소비자의 이익과 자신들의 이익 사이에서 순순히 전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정부의 규제와 시민, 소비자단체의 감시만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로이터의 기사에 따르면 존슨앤존슨이 활석을 원료로 하는 제품에서 나오는 매출은 일 년에 4억 2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5천 억 원 가량이지만, 기업 전체 매출(765억 달러)에 비하면 아주 작은 액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이비 파우더의 명성을 지키려는 이유는 이 제품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석면과 무관한 가정주부들이 석면이 원인으로 의심되는 암으로 사망하면서 활석을 원료로 한 존슨앤존스 베이비 파우더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이 기업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사 결과를 감추거나 파기했을 뿐 아니라, 외부에서 불리한 연구가 나오면 이에 반하는 결과를 내도록 연구자를 매수하거나 심지어 대필작가(ghost writer)를 고용하기도 했음이 밝혀졌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연구를 막는 전략을 언급한 존슨앤존슨의 내부자료

꼬리 자르기

이런 내용이 드러나면서 존슨앤존슨은 더이상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고, 2020년 3월에는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서는 활석을 원료로 한 베이비 파우더를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대규모 소송이다. 현재 이 회사는 베이비 파우더와 관련해서만 3만 8천 개의 소송이 걸려있고,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배상금을 모두 지불할 경우 2백억 달러를 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케이티 포터 하원의원의 트윗. "난소암에 걸린 수만 명의 여성이 소송 중인데, 이 회사가 원하는 건 자산 보호다."

그럼 존슨앤존슨의 결정은? 꼬리 자르기다. 최근, 이 기업은 텍사스에 LTL이라는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었다. LTL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인데, 존슨앤존슨은 여기에 베이비 파우더 제품과 관련한 모든 책임을 이 신생 자회사에 몰아넣고 파산 신청을 해버렸다. 이 기업이 가진 자산은 약 20억 달러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치료비 소송에 이겨도 이 회사의 자산 외에는 받아낼 방법이 없게 된다. 너무나 뻔뻔스러운 수법이지만, 텍사스주에서는 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감추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LTL의 홈페이지는 파산신청에 관한 정보 외에는 없다.  

소비자 보호 운동의 대명사격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또 하나의 대기업이 파산제도를 악용해서 자산을 보호하고 책임을 회피한다"면서 이를 막기 위한 법안을 마련했다는 내용의 트윗을 했다. 

사람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이 기업이 재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천문학적인 매출을 내는 다국적 기업일 뿐 아니라, 팬데믹 동안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백신을 개발해서 또 큰 이윤을 내고 있다. 이 기업에는 피해자들이 승소할 경우 배상할 수 있는 돈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Caring Company," 즉 소비자를 돌보는 기업으로 포장해온 회사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만든 제품으로 피해자들이 불치병에 걸리자 치료비와 배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선택했다.

모든 잘못과 책임은 유령회사가 떠맡아 파산하고 나면 존슨앤존슨은 소비자를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홍보를 계속하겠지만, 그 말은 페이스북은 "청소년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저커버그의 말처럼 공허하게 들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