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영화가 땡길 때" 보는 영화가 있고, 쉬고 싶을 때 보는 영화가 있다. 전자와 후자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고르기 힘들까? 쉬고 싶을 때 별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가 훨씬 더 고르기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평점 10점 만점에 7점, 아니 6.5만 넘어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피곤해서 영화로 휴식을 찾으려면 아주 잘 고르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 어렵거나 예술적이어도 안 되고,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너무 단순해도 즐기기 힘들다.

우리는 이럴 때 예전에 본 적 있는 영화를 찾는다. 완벽하게 다 기억하지는 않아도 줄거리를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이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도 작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옛날에 재미있게 본 영화를 다시 보고 실망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지만,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고 다시 보면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전락하는 게 있고, 시대를 넘어 고전(classic)으로 승화하는 작품이 있다.

얼마 전에 옛날 영화, 'Lost in Translation'(2003)을 다시 보면서 이를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