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뉴욕타임즈가 발행한 기사 하나가 많은 미국인을 분노하게 했다. 남미에서 부모 없이 들어온 미성년 아이들이 미국의 유명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고발 기사였다. 이 기사에는 12~16세의 아이들이 도살장, 위험한 기계가 사용되는 공장, 건설 공사장 등에서 일하다가 신체가 절단된 사례, 중장비에 깔려서, 혹은 높은 곳에서 추락해서 사망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1백 명의 아이들을 인터뷰한 해나 드라이어(Hannah Dreier) 기자는 이 아이들이 각종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쉬쉬했을 뿐 업계에서는 잘 아는 일이라고 했다. 기사가 밝혀낸 충격적인 내용에 미국인들은 "우리가 이 수준밖에 되지 않느냐"며 분노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특별 팀을 꾸려 기업이 미성년자들에게 불법 노동을 시키는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14세 소년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이 일로 워싱턴이 발칵 뒤집힌 직후, 아칸소주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법 하나가 통과 되었다. 기존 법이 정한 바에 따르면 고용주가 16세 이하의 미성년자에게 일을 시키려면 아이의 나이와 함께 근무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아이 부모가 이를 허락한다는 확인 서명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법은 이 모든 "번거로운" 절차와 부모에게 돌아가는"불필요한 부담"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주지사가 이 법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처지의 아이들을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작업장에 밀어 넣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법에 서명한 사라 허커비 샌더스 (Sarah Huckabee Sanders) 주지사는 기독교 목사 출신으로 아칸소 주지사를 역임한 마이크 허커비의 딸이자, 트럼프 백악관의 대변인으로 2년 동안 대통령의 충실한 입 역할을 하면서 큰 비판을 받았던 인물로, 작년 선거에서 아칸소주 주지사에 당선되어 올해 초에 임기를 시작했다. 악용될 것이 뻔한 이 법에 서명한 이유가 뭘까?

미국의 고용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일을 할 일손이 부족해졌고, 아이들의 임금은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막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계를 꾸리기 힘들게 만들었던 미국의 기업들이 이제는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온 가족이 일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준비 중이라고 비난한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임금을 적게 줄 경우에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노동조건에 불만이 없고 자신의 권리를 모른다. 고용주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일손이다.

아칸소의 주지사가 자신을 후원해준 기업가들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성년 노동 규제 완화법에 서명하는 사라 허커비 샌더스 주지사. 환하게 웃고 있는 어른들과 침울한 아이들의 표정이 대조되어 화제가 된 사진이다. (이미지 출처: Arakansas Democrat Gazette)

이제 아칸소의 노동자들은 임금이 저렴한 아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아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게 되었다. 물론 위험한 일터에 가야 하는 아이들은 위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잘 차려입은 아이들은 아닐 것이다. 백인보다는 유색인종일 가능성이 높고, 부모가 없거나 함께 살지 않는 아이들, 혹은 부모없이 홀로 미국에 들어온 아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칸소주는 이들의 노동력을 원하는 것이다.

전혀 놀랍지 않을 사실이지만, 미국의 기업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미성년자의 노동력을 탐내왔다. 그뿐 아니라 아동들 편에 서서 보호법을 만들고 아동 노동을 규제하려는 연방 정부와 대립해왔다. '기업의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는 모든 정부 규제는 악이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가려는 시도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시도'라는 얘기는 한국에서도 꽤 익숙하다. 자유기업원 같은 단체 이름에 '기업'과 '자유'처럼 서로 무관해 보이는 단어들이 함께 들어가 있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이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이를 홍보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아래는 'The Big Myth: How American Business Taught Us to Loathe Government and Love the Free Market (거대한 신화: 미국 기업들이 우리에게 정부를 혐오하고 자유시장을 사랑하도록 가르친 방법)'라는 책을 쓴 하버드 대학교 나오미 오레스키스(Naomi Oreskes) 교수가 한 인터뷰에 나와서 진행자와 나눈 이야기를 읽기 쉽게 옮긴 것이다. 전체 내용은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잊었거나 아예 모르는 사실이 있다. 과거에는 노동이 아주 위험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한 배경이 이거다. 과거 (북동부) 매사추세츠주의 방직 공장에서는 심지어 두 살짜리 아이도 일했다. 두 살짜리 뿐 아니라 다섯 살, 여섯 살 아이이라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공장 노동을 시작한 경우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하는 일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며,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가 개입해서 이를 금지하는 것은 기업가의 자유, 부모의 자유–특히 아버지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며, 아이들이 일하는 문제는 부모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가진 경제적 특권과 미국식 자유(American freedom) 개념을 연결하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1백 년 동안 우리가 끊임없이 들어왔던 그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의 노동 관련 규제를 막으려는 홍보(PR) 캠페인을 주도한 것은 미국 제조업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NAM)였다. 시어스(Sears), GE 같은 당시 최대 기업의 대표들로 구성된 단체로, 이들은 힘을 합쳐 아동 노동을 지지하는 홍보 캠페인을 만들어냈다.

폰 미제스, 폰 하이에크, 프리드먼

1944년 듀폰(DuPont)의 임원이었던 재스퍼 크레인(Jasper Crane)과 미국에서 리버태리언 단체를 이끌던 해롤드 러노우(Harold Luhnow)가 재계의 지도자들을 이끌고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미국에 확산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이들이 받아들인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탄생했고,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경제학자 두 사람이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영국의 경제학자, 정치철학자로 197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였다.

크레인과 러노우가 이끄는 젊은 기업인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외국에서 들어온 이론이라며 비판했지만, 뒤로는 폰 하이에크의 이론을 수입하기 위해 미국의 대학교들에 돈을 기부하면서 이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들을 교수로 데려오게 했다. 그렇게 해서 폰 미제스는 뉴욕대학교(NYU)에, 폰 하이에크는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가르치게 된다. 특히 폰 하이에크의 대표작 '노예의 길 (Der Weg zur Knechtschaft, The Road to Serfdom)'은 그렇게 미국인들에게도 소개되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보수 방송인 글렌 벡, 러쉬 림보, 공화당 정치인 테드 크루즈, 폴 라이언 같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남긴다.

폰 하이에크의 대표작 '노예의 길' 독일어판, 영어판, 한국어판

'노예의 길'의 핵심 주장은 자본주의와 자유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전체주의(totalitarianism)에 빠져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 애초 폰 하이에크는 소련식의 중앙 계획경제 체제에 대한 대응으로 이 책을 썼다. 정부가 경제를 계획하기 시작하면 결국 경제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특정 공장이 얼마나 많은 제품을 생산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지도 정부가 결정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사람들을 통제하게 된다. 그는 결국 정부는 경제만 통제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통제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다.

폰 하이에크는 분명 중요하고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을 따르는 기업인들은 그의 주장을 가져다가 정부가 시장에 하는 어떤 행위에도 반대하는 논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아동 노동을 금지한 정부의 결정이다. 원래 폰 하이에크는 추종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주장을 하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할 적절한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가령 정부는 오염이나 삼림 파괴를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폰 하이에크를 추종하는 재계 인사들은 그의 주장을 흑백논리로 사용했다. 그를 시카고 대학교에 취직시킨 이들은 '노예의 길'을 단순화한 요약한 버전으로 만들면서 원문에 존재하던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할 내용, 혹은 주의사항들을 모두 제거해버렸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만화 버전(여기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으로 제작해 '룩 매거진(Look Magazine)'을 통해 미국의 수백만 가정에 퍼뜨렸고, 정부가 조금이라도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에트식 독재 체제 아래 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노예의 길' 만화 버전 (이미지 출처: Mises Institute)

이 기업가들은 더 나아가 시카고 대학에서 '자유시장 프로젝트(Free Market Project)'라는 대규모 연구를 하도록 후원해 규제가 없거나 아주 약한 미국식 자본주의 청사진을 만들게 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는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프리드먼을 지원해서 그가 일련의 강의를 통해 이 아이디어를 미국에 퍼뜨리도록 했고, 프리드먼은 이 강의를 다시 책으로 만들어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다.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이다.

이 책은 나중에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앞서 언급한 미국 제조업협회(NAM)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작도 후원했는데 그중 유명한 것이 미국 전역에 방송된 '미국의 로빈슨 가족 (American Family Robinson)'이다. 이 프로그램은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에 반대하는 주장을 곁들인 라디오 드라마 형태로 전달하는 프로파간다(선전)였다. 이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설명한 NAM의 공식 문서가 이를 "프로파간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바람에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에 피해가 생긴다거나, 미국인은 남의 도움 없이 두 발로 스스로 일어서야 하며, 정부의 개입이 핵가족의 중요성을 위협한다는 식의 주장을 등장 인물의 입을 빌어 전달했다. NAM의 후원을 받은 '미국의 로빈슨 가족'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백 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수년 동안 무료로 방송되면서 수백만의 미국인이 이를 청취했다.


'지상 최대의 홍보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