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경기 중 한 선수가 큰 부상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걸 보도한 사진들은 아예 부상당한 선수의 다리를 보여주지 않았거나, 'Warning: Graphic Image'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그 부상의 모습을 설명하려는 생각만으로도 손에 식은땀이 날 만큼 충격적이 사진이었다. 뼈가 튀어나온 모습이었으니 혹시 본 적이 없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이라도 인터넷 검색은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본 많은 사람이 가졌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싸이클이나 자동차 경주처럼 '탈것'을 이용해 빠른 속도가 나는 경기도 아니고, 양궁이나 사격 처럼 위험한 도구가 사용되는 경기도 아니고, 그저 공을 가지고 좁은 코트에서 뛰는 농구에서 어떻게 그렇게 처참한 사고가 날 수 있지?" 아무것도 없는 좁은 농구 코트에서 아무리 무리를 해서 뛴다고 해도 그렇게 다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원래 그 선수의 뼈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계 정상급의 운동선수에게 골다공증 같은 증상이 있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뿐 아니라, 특수한 상황이 있었더라고 해도 그런 사고는 나기 힘들다. 적어도 일반인들에게는 그렇다.

초인적인 힘의 원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크지 않은 체구의 여성이 자동차에 깔린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번쩍 들었다는 전설(urban legend) 같은 이야기를 한 번 쯤 들어본 적 있을 거다. 'Excited delirium' 혹은 흥분된 섬망(譫妄)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알려진 이런 초인적인 힘의 발휘는 의학계에서 오래된 수수께끼 중 하나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같은 조건에서 반복됨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피험자를 대상으로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인 연구는 하기 힘들어도 그 사례들은 꾸준히 등장한다. (과학적인 연구는 아니지만, 위키피디아의 'Hysterical strength' 항목에 그런 사례들이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슈퍼맨의 한 장면처럼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상황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 경우는 있다. 고압 전류에 감전사고를 당한 사람이 "튕겨져 나갔다"는 사고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되는데, 이건 과학자들도 충분히 그 이유를 납득한다. 흔히 '전기 충격' 때문에 튀어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고를 당한 사람이 스스로 밀어내서 생긴 일이다. 물론 여기에서 '스스로'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의식적으로 밀어낸 것이 아니라 전기로 인해 근육 발작(muscle spasm)이 일어나 순간적으로 근육을 움직인 결과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을 수 있어도 그 힘의 원천은 자신의 근육이다. 그렇게 튀어 나간 사람 중에는 평소 본인의 힘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점프를 해서 허공을 날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게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응급한 상황에서 초인적 힘을 발휘한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사람들은 사실 자신의 신체가 가진 '능력의 한계치'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힘을 사용하지 않는, 혹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의식/마인드 때문이다. 선수나 군인을 훈련시키는 코치, 교관은 이런 마인드를 '두려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약한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는 사람이 몸을 보호하고 다치거나 상하지 않도록 지키려는 정상적인 작용이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를 돕는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그들의 문제가 근육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최정상에 있는 선수의 근력, 심폐 능력의 100%를 끌어내어 승리하게 만들려면 그걸 사용해야 하는 선수를 가로막고 있는 정신적인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올림픽 운동선수

프로 이종격투기(mixed martial arts)는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경기에 거의 예외 없이 신체 손상이 수반된다는 것을 알고 링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원천은 엄밀하게 말하면 싸움의 상대가 아니라, 신체 손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상대가 두렵다면 그것은 그 상대의 의도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나의 신체를 손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부어오르고, 멍이 들고,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나고, 때로는 이빨이 빠지는 프로 이종격투기는 그래서 일반인이 할 수 없는 경기다.

그런데도 그런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두려움, 혹은 신체 보호의 욕구를 꺾을(override)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평균보다 아드레날린 수치가 높기도 하지만, 오랜 훈련을 통해 정신적으로 이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배웠거나 터득한 것이다. 스포츠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코치의 펩토크(pep talk)는 자신들보다 월등히 더 강하다고 '생각하(하고 두려워하)는' 상대 팀과의 경기에서 위축된 선수들을 흥분 시켜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마법의 열쇠다.

헐리우드 스포츠 영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펩토크 모음 

격투기나 팀 스포츠에서만 이런 멘탈 트레이닝이 필요한 게 아니다. 올림픽 스키 점프대나 다이빙 플랫폼에 올라본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고,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별문제 없이 뛰어내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공포심을 억누르는 훈련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포심을 억누르지 못해 움츠리거나 주저하는 순간 오히려 크게 다친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극한의 스포츠들이다.

스스로에게 거짓말하기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순간을 잡아낸 연구가 있다. 해럴드 새크하임과 르우벤 구어라는 두 명의 심리학자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생각한 것과 잠재의식이 가진 생각이 서로 다를 때는 잡아내는 실험을 고안했다. "자신의 성적인 능력을 의심해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성폭행하거나 성폭행당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느냐" 같은 질문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을 하지만 그중에는 잠재의식 수준에서는 '그렇다'고 답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피험자들이 거짓말 탐지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피험자가 굳게 "없다"라고 대답할 때 몸은 '그렇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찾아낸 것이다. 즉,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이런 잠재의식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믿는데, 이건 엄밀하게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들의 잠재의식을 억누른 것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거짓말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스포츠 심리학자인 조애나 스타텍은 이를 운동선수에게 적용하는 연구를 했다. 새크하임과 르우벤의 질문지를 가지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잘 하는 운동선수와 스스로에게 솔직한 운동선수를 구분한 후에 그들의 실력과 비교한 것이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사회적, 도덕적으로 난감해질 수 있는 질문에는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은 선수들, 즉 자신의 잠재의식을 거짓말, 혹은 의식적으로 억누르는 선수들의 기량이 (동일 신체조건을 가진) 다른 선수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았다.

우리는 선수들이 "나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고 외치는 것을 자주 본다. 사실 경기는 어느 쪽으로도 흐를 수 있고, 누구도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구호를 외치면서 정말로 이길 거라 믿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질 가능성의 감안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속이는 선수들이 훨씬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운동경기에서의 승리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더 행복하다고 한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분명한 위험, 분명한 패배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거나, 없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운동선수들의 멘탈 트레이닝인 셈이다.

시몬 바일스의 기권

미국 선수 시몬 바일스가 세계 최고의 체조선수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우리 시대 최고의 선수도 아니고, 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의미에서 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선수가 바일스다. 그런 바일스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몇 개의 경기를 기권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팀과 나라를 실망시켰다"는 흔한 수준의 비난도 있지만 "이기적인 소시오패스"라는 개인적인 공격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비난은 그가 나약하다(weak)는 비난이다.

이런 비난의 황당함에 대해서는 애슬레틱The Athletic의 스포츠 기자 카비사 데이비슨이 트윗을 통해 잘 지적했다. "시몬 바일스는 양쪽 발에 발가락이 부러진 채로 미국 전국대회를 우승했고, 신장결석을 가지고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고, 성폭행의 피해자임에도 미국체조협회가 보호해주지 않는 압박을 견뎌내고 경기를 한 사람이다. (그런 바일스에게) 강인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신들 중 절반은 식료품점에서 마스크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것도 부족하다면 '당신이 시몬 바일스의 결정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의사결정 나무(decision tree)도 나왔다. 왼쪽 박스 안에 등장하는 것만 읽어봐도 바일스가 얼마나 엄청난 선수인지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시몬 바일스의 말을 한 번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체조선수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며"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키겠다"는 바일스의 말은 1997년생 동년배 오사카 나오미의 말을 연상시킨다. (오사카 나오미가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 한 발언과 관련해서는 '오사카 나오미, Full Text'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를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가 자신의 정신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기를 기권하겠다는 말은 "그럴 거면 왜 국가대표로 나갔느냐"라는 공격을 받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이 과연 국가의 영예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즈는 이를 두고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앞세워 이야기하면 안된다는 오랜 금기를 바일즈가 깼다고 설명했다.

"The Twisties"

바일스는 최근 자신의 고난도 기술이 예전과 달리 무섭게 느껴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체조선수들이 공중에 떠서 몸을 회전하는 건 위험한 동작이다. 체조 대회에 출전해 본 사람들에 따르면 올림픽 체조대회에서 선수들이 뛰는 바닥은 보기보다 아주 단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떨어질 때 자신의 몸이 어떤 위치, 즉 똑바로 서 있는지 거꾸로 서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머리부터 떨어지면 목이 부러지는 최악의 사고가 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한국 체조의 유망주 김소영 선수가 16세의 나이에 척수 장애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은 일반인들은 겁이 나서 시도할 수도 없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일스가 느낀 '트위스티'를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

바일스는 올림픽 단체 최종전에서 평소와 같은 2 1/2 트위스트를 하는 대신 1 1/2 트위스트를  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트위스티를 느꼈다(I had the case of the twisties). 체조선수들이 말하는 트위스티란 공중에 뜬 상황에서 자기 몸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수준의 선수들은 모두 비슷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바일스는 누구도 힘들어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는 바일스가 공중에 떠서 빠르게 회전하는 동안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드문 선수라고 감탄했었는데, 그런 바일스가 "내 몸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라며 전에 하던 동작이 무섭게 느껴진다고 하면 그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건 오로지 바일스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위험신호이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깨달음

그렇다면 바일스는 왜 갑자기 자신이 해오던 동작이 두려워졌을까? 덴버 대학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가르치는 마크 아오야기 박사가 흥미로운 설명을 했다. 시몬 바일스의 심리적인 문제에서 mental health(정신 건강)mental performance(심리적 수행능력), 둘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개인의 건강, 웰빙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에 초점이 있는데, 바일스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해서 맞닥뜨린 문제를 후자, 즉 심리적 수행능력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아오야기 박사는 바일스의 나이와 수행능력에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 두뇌의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은 의사결정, 사회적 행동을 조율하는 등 높은 수준의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인데, 이곳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미래를 그리고 지금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상상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27세가 되어야 전전두엽 피질의 성장이 완성된다고 한다. 20대 초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을 겁 없이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전전두엽 피질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시몬 바일스가 자신의 동작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바로 전전두엽 피질이 완성되는 나이에 들어서면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아오야기 박사의 설명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소위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아직 두뇌가 완벽하게 성장하지 않은 20대 초중반의 운동선수들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20대 초중반이 수행능력(performance)이 정절에 이른다는 것은 신체발달은 완성되었지만, 두뇌는 완성되지 않아서 당연히 두려움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두려움을 아직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올림픽 운동선수가 최절정에 머무르는 순간은 24개월"이라는 말도 어쩌면 그래서 나왔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젊은 운동선수들을 계속 밀어붙여 고난도의 기술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위험을 느낀다거나 정신 건강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말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