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그러니까 지금부터 정확히 10년 전에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패러디 영상이 하나 있었다. "노르웨이를 돕는 아프리카 (Africa for Norway)"라는 이 영상은 아프리카의 뮤지션들이 모여 '라디에이드(Radi-Aid)'라는 곡을 만들어 부르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 영상은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북유럽에 있어서 매년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기 때문에 따뜻한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들에게 라디에이터(radiator, 난방기)를 보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상 곳곳에 힘겹게 눈을 치우거나 빙판에서 미끄러지는 노르웨이 사람들과 눈길에 쓰러진 트럭의 모습이 나오고, 뒤이어 화려한 스튜디오에서 잘 차려입은 흑인 남녀 가수들이 등장해 밝게 웃으며 "그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라면 "우리 아프리카인들이 난방기를 보내자"는 노래를 부른다.


일정 연령대 이상이라면 이는 1984년 에티오피아 대기근 때 영국과 아일랜드 가수들이 모여서 밴드에이드(Band Aid)라는 이름으로 만든 곡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패러디한 것임을 눈치챘을 거다. SAIH라는 노르웨이 단체에서 만든 이 패러디는 우리가 종종 '미러링'이라고 부르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기를 시도한다. 아프리카인 전체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틀 안에 멋대로 가둬두고 그들을 객체화하는 모습을 뒤집어보자는 것이다. 노르웨이를 잘 모르는 먼 지역 사람들이 노르웨이 사람들을 멋대로 촬영해서 "불쌍한 이들이 추운 데서 고생하고 있으니 돕자"는 영상을 만들어 서로 돌려보며 즐기고 있으면 어떤 기분일 것 같으냐는 것이 이 영상이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 영상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 같지 않다. 그 뒤로도 세계적인 가수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를 방문해서 굶고 병든 사람들 사이에서 천사놀이를 하는 영상이나 홍보물은 꾸준히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 2007년에 유명한 스타의 영상 하나가 구설수에 올랐다. 우리나라에도 팬이 많은 가수 에드 시런(Ed Sheeran)이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해변을 돌아다니면서 모래사장에 놓인 배 안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을 비디오로 촬영한 것이다. 시런은 '이 불쌍한 애들을 좀 보라'는 태도로 "잔인한 현실"을 고발하며 시청자들에게 기부를 요청했고, 자기 맘 같아서는 당장 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호텔방에 데려가서 편안한 쉼터를 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시런은 팬들에게 기부를 요청하려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느긋하고 철없는 소리에 분노했다.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해온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수십 년 동안 반복해온 서구 갑부의 천사놀이를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에드 시런과 영상을 제작한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유난히 어둡게 촬영된 그 영상에서 흰 피부의 시런은 마치 세상에 내려온 천사처럼 보이고 시런이 "돌보려는" 검은 피부의 아이들은 그저 시런의 선행을 위한 들러리, 배경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영상 속 아이들은 인격을 가진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객체이며 추상적인 개념인 빈곤이 체화(體化)된 사물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동남아를 순방하고 있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찍은 사진에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도 그 사진에서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는 아이도 아니고 큰 수술을 받아 회복 중인 아이를 굳이 집까지 찾아가서 안아줘야 했는지 궁금했지만 아무리 기사를 뒤져도 알 수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아이는 "김 여사가 헤브론 의료원에서 어린이들을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려 했지만 최근 뇌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어서 오지 못했다"라고 한다.

아픈 아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방문에 굳이 참석하려 했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지만 요즘 대통령실의 홍보라는 게 '설정샷'을 찍고 '그냥 적당히 믿어달라'는 식이니 그렇게 믿어주기로 하자. 하지만 어린아이의 얼굴을 노출시키는 포토옵(photo-op)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그 아이여야 한다. 에드 시런의 경우 위에서 말한 영상으로 많은 욕을 먹었지만 최소한 '기부를 하라'는 메시지는 전달했고, 어디에 기부해야 할지도 분명하게 전달했다. 그는 자신이 돋보이게 촬영한 것 때문에 비난을 받은 거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의 사진은 그냥 '영부인이 이런 사람인 걸 보라'는 목적일 뿐이다. 아이는 이 목적을 위한 무대장치다.

(이미지 출처: Metro)

에드 시런의 영상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상이 나온 후에 영국 작가 아푸아 허쉬(Afua Hirsch)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빈곤 포르노'라는 표현을 소개했다. (허쉬의 글 제목은 "에드 시런의 의도는 좋지만 이런 빈곤 포르노는 그만 해야 한다"이다.) 지금은 우리에게도 제법 익숙한 개념이 되었지만, 허쉬에 따르면 이 표현은 덴마크의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요르겐 리스너(Jorgen Lissner)가 처음 만들어냈다. 리스너는 1981년에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게재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빈곤 포르노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굶주리는 아이들의 사진은 비윤리적인 이유는 첫째, 이런 이미지가 위험할 정도로 포르노그래피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포르노그래피를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존중이나 존경 없이 발가벗겨 내보이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기아부종(飢餓浮腫)으로 배가 불룩하게 나온 아이들을 광고 사진으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포르노그래피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고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고통은 인간의 삶에서 섹슈얼리티만큼이나 아주 개인적이고 섬세한 것이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공개하는 것은 한 인간의 신체와 고통, 슬픔, 그리고 공포를 무분별하게 낱낱이 확대해서 전시하는 행동이다." (이 글의 전문은 고통을 파는 사람들 ② 에서 소개한다.)

대통령실에서는 아이와 아이의 가족에게 동의받고 촬영했다고 하겠지만 이런 문제는 동의 여부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에드 시런이 동의를 받지 않고 영상을 제작했을까? 진짜 문제는 "고통은 아주 개인적이고 섬세한 것"이라는 리스너의 말을 영부인이나 대통령실 홍보 담당자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이번 캄보디아의 사진으로 "배우 오드리 헵번 이미지를 흉내 냈다"라는 비판을 받자 여당 쪽에서 나온 반박은 "국제구호단체의 친선 대사를 지냈던 배우 김혜자 씨, 정애리 씨도 같은 구도의 사진이 여러 장 나와 있으니 참고하라"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사진보다 더 딱하게 생각하는 게 그런 반박이었다. 한국인의 이미지 독해력 수준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가령 김혜자 씨의 사진을 보면 아이에 대한 애정, 아이와의 교감이 읽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 속 아이는 무대장치가 아니라 인격체로 보인다. 더구나 이 두 배우는 구호단체의 대사로 오래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다. 구호단체가 이런 사진을 계속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어도 친선대사들의 노력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대통령실이 다양한 이미지를 '참고해서' 이번 사진이 탄생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대통령이 일하는 모습이랍시고 참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설정'임을 알아챈 것처럼 말이다. 그 차이를 대통령실만 모르는 것 같다.

이미지 출처: 크리스천월드 관련기사

정치인에게 사진이 중요한 걸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아니, 잘 알기 때문에 하는 충고이고, 한국 대통령과 영부인이 외국에 나가서 하는 언행은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조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이미지에 대한 이해와 담론도 발전하고 있다.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 한 번으로 사진을 비교하고 사진사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데 대통령의 홍보를 담당한 사람들은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고, 국민이 1980년대 수준의 이미지 독해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출근하는 날 김정숙 여사가 배웅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보수적인 한국인들에게 만족감을 주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역할을 그렇게 고정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그 장면이 프로의 연출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이고, 그래야 한다. 행정부 최고의 기관에서 아마추어 수준의 놀이를 하는 걸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본문에서 언급한 SAIH는 구호 단체들의 영상을 비꼬는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고통을 파는 사람들 ②에서 요르겐 리스너의 글 전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