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다른 나라의 문화, 역사보다 객관적으로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쉽게 "조지 워싱턴"이라고 대답하겠지만, "근대 터키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사람이 많지는 않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대해서 읽어보면 조지 워싱턴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았고, 그의 업적에 감탄하게 되지만 순전히 지금 터키가 전 세계 최강대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이름은 워싱턴만큼 잘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그랬다. 한국 문화는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가령 세계 미술사 교과서에서 동아시아 챕터를 보면 중국이 60%를 차지하고, 일본 미술사가 30%, 한국을 다루는 내용은 남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현대사에 중요한(relevant)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고, 한국보다 중국과 일본이 더 관심을 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그저 자동차와 전자 제품 브랜드로만 구분할 수 있었던 나라였다가 이제는 음악과 영화, 음식과 같은 문화 영역에서 '동아시아'라고 하면 한국이 가장 먼저 떠오르거나, 한국을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우스운 일도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K-웨이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K-팝이 주도해서 일어난다고 보기 힘들다. 특정 세대, 특정 집단에서는 K-팝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겠지만, 외국에 살면서 느끼는 건 각 분야에서 일제히 한국의 문화가 두각을 내는 쪽에 가깝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 테크 저널리스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트위터와 팟캐스트에서 KIA Sorento를 샀다고 자발적으로 홍보하는 건 그가 BTS를 즐겨 듣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샌드라 오의 연기 인생

한국계 캐나다 배우 샌드라 오의 인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한국인으로 등장해서 큰 인기를 끌고 큰 상도 받고 있다. 그가 중국계나 일본계 역할이 아닌 한국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많이 알려진 것도 분명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지만, 한국이 유명해졌다고 해서 샌드라 오의 연기가 갑자기 좋아진 것이 아니다.

샌드라 오는 최근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더 체어(The Chair)'의 주인공, 그것도 명문대의 동양계 영문학 교수 역할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인기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크리스티나 양이라는 캐릭터로 이미 잘 알려진 배우다. 그는 지난 8월, '더 체어'의 넷플릭스 개봉을 앞두고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이런 종류의 인터뷰를 프레스 정킷 press junket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깊이 있는 인터뷰로 유명한 NPR의 프레쉬 에어(Fresh Air)에 등장해서 약 30여 분 동안 진행자 테리 그로스(Terry Gross)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에서 일부를 번역, 소개하겠지만 여기에서 인터뷰를 직접 들을 수 있고, 대화의 녹취록도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지만 유독 뮤지션, 배우, 감독 등 예술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테리 그로스는 30, 40분 동안의 대담으로 인터뷰이의 인생을 다 드러내는 뛰어난 인터뷰어. 그런데 샌드라 오는 그로스와 인터뷰가 처음이 아니다. (그로스가 두 번 이상 인터뷰이 부르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많지 않다).

테리 그로스는 '더 체어'의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가벼운 한국 문화 이야기를 나눈 후 영국 BBC 드라마 '킬링 이브(Killing Eve)'로 주제를 바꾼다. 이 드라마는 메이저 TV 드라마에서 샌드라 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실상 첫 작품이다. 이 대목부터 우리말로 옮겨본다.

테리 그로스: 샌드라 오는 넷플릭스 코미디 시리즈 '더 체어'에서 한 유명한 대학교 영문학과의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유색인종 학과장을 연기합니다. 영국의 스파이 스릴러 '킬링 이브'에도 출연 중이죠. 네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을 촬영 중입니다.

(샌드라 오에게) 지금 '킬링 이브'의 마지막 시즌을 촬영하기 위해 런던에 계시면서 (미국에 있는)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데요, '킬링 이브'에는 어떻게 캐스팅되셨나요?

샌드라 오: 아, 그쪽에서 먼저 제안했어요. 아주 전통적인 방법으로 파일럿을 가지고 제게 찾아왔고 제가 승낙했죠 (웃음). 하지만 제가 '킬링 이브'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받았던 순간을 기억하는데–저는 그 때 브루클린의 길거리에서 에이전트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솔직히 말하면 저는 통화를 하면서 폰으로 대본을 훑어보다가 이렇게 물었어요. "이해가 안 되는데, 이 대본에서 제가 어떤 캐릭터를 하는 거예요?"하고 말이죠. 그랬더니 에이전트가 "이브(주인공) 역이죠. 이브 역을 하게 되는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은 제가 한 인간으로서 어느 위치에 있고, 제가 인종주의를 얼마나 철저하게 내재화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제 연기 경력 내내 저 자신과 제가 속한 커뮤니티를 포함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분명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왔어요. 그런데 그런 제가 저 자신 조차 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을 순간, 저는 너무나 부끄럽고, 정말 슬펐습니다.

그로스: 제작진이 주연 역할을 맡아달라고 하는 걸 상상도 못 했다는 건가요?

오: 네, 그랬던 것 같아요. 그걸 알아보지 못했어요. 몰랐죠. 그 순간에는 '흠.. 캐롤린이라는 캐릭터가 있네. 나이가 좀 있으니까, 캐롤린이 내 역할인가?' 했어요. 암살자 역인 빌라넬(또 다른 주연으로 러시안 여성 캐릭터)은 아닐 것 같았구요. 빌라넬은 싸우는 장면이 많고 하니까. 즉석에서 그렇게 생각해버린 거죠.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나요?

그 순간에는 그렇게 별 생각 없었고, 나중에야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그랬지? 이유가 뭐지? 드라마 제목이 '킬링 이브'인데 왜 내가 이브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 주인공이잖아? 나는 왜 누군가 내게 주인공 역할을 제안할 거라고 당연하게(naturally) 생각하지 않았지? 라고 말이죠.

여기에서 잠깐. 샌드라 오는 누군가 자신에게 주연을 제안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을 내재화된 인종주의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소수인종뿐 아니라, 주류로 대우받은 경험이 없는 모든 소수집단과 약자들이 공유하는 경험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미디어계에서 성공한 롤 모델을 찾기 힘들었던 테리 그로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테리 그로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 영상을 잠깐 보자.
그로스는 샌드라 오의 말을 들으면서 큰 공감을 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로스는 자신이 인터뷰이가 아닐 때는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큰 공감도 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너무나 차갑게 느껴지지만, 인터뷰어는 개입하지 않고 철저한 관찰자로 존재하는 그로스의 인터뷰 스타일을 좋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 다시 샌드라 오의 인터뷰로 돌아가자.

그로스: 캐나다에서 성장했죠? 어떤 동네에서 자라셨는지 설명 좀 해주시죠.

오: 제가 자란 곳은 알링턴 우즈(Arlington Woods)라는 곳이었어요. 아주 평범한 캐나다의 작은 교외 지역이죠. 어떤 동네냐 하면, 학생들이 다 걸어서 학교에 가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모두 두 블록 안에 다 모여있는, 아주 작고 평범한 동네였어요.

그로스: 동네에 다른 아시안이나 아시아계 사람들이 있었나요?

오: 유색인종 자체가 아주 아주 적었고, 그 유색인종 아이 중에서도 인종이 다양했죠. 하지만 하나의 그룹을 형성할 만큼의 숫자가 되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도 그 시절 여자친구들과 아주 가깝지만, 전부 백인이에요.

그로스: 그럼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은 받지 않았나 보군요. (다른 아이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신 건가요.

오: 아, 아뇨 (웃음). 전혀 아니었어요. 당연히 아웃사이더라고 느꼈죠. 가는 곳마다 내가 유일한 아시안이라는 걸 깨닫는 건 어려운 게 아니죠. 저는 그렇게 자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저는 그렇게 백인들의 세상에서 가능하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저 자신을 사회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다른 유색인종 예술인을 만나고 제 세상이 확장되기 시작한 건 제가 집을 떠나 몬트리올에 있는 (연기)학교에 진학하고, 그 후에 토론토, 로스앤젤레스로 옮기면서였죠.

그로스: 부모님이 한국에서 이민을 오셨죠? 그 분들이 대략 몇 년도에 캐나다로 가셨죠?

오: 제 부모님은 처음에는 미국으로 먼저 오셨어요. 1965년 이후로 한국에서 학생들이 미국에 갈 수 있게 문호가 열렸습니다. 제 부모님이 오신 게 그때였죠. 처음에는 미국에 있는 대학교로 가셨다가 나중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대학교로 옮기셨고, 그다음에 오타와로 이사하셨죠. 저는 오타와 교외 지역에서 자란 거고요.

그로스: 부모님은 대학원에서 어떤 공부를 하셨죠?

오: 아, 제 어머니는.. (웃음) 이건 정말 창피하네요. 과학 쪽을 공부하셨어요. (샌드라 오는 어머니의 전공을 정확하게 모르는 듯) 아, 창피합니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우리 가족 중에서 석사학위가 없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제 어머니는 과학을, 제 아버지는 경제학을 공부하셨어요. 챙피하지만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예요. 제 어머니는 교육을 많이 받으셨죠. 하지만 (언어가 다른 곳으로) 건너오면 자신이 가진 스킬을 완벽하게 사용하기 힘들죠. 그래서 어머니는 정부 기관에서 연구직(research scientist)을 하셨어요. 약리학(pharmacology)을 공부하신 거 같아요.

그로스: 그분들이 한국을 떠나실 때 그곳은 어떤 환경이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부모님은 당신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사셨는지 이야기를 하시나요?

오: 그분들이 20대 중반에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겪으신 일은 제가 상상하기도 힘들어요.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나라가 완전히 파괴되었죠. 한국에 그런 일들이 있고 난 후에 부모님이 대학에 진학하셨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대학 교육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고, 그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한국 학생들을 받아들이자 기회를 붙잡으신 거죠. 부모님이 미국으로 오신 건 당시 한국의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당시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던 시절입니다.

샌드라 오와 그의 부모

그로스: 부모님은 미국에 오실 때 영어를 구사하셨나요?

오: 음, 참 창피한 노릇이네요. 제가 제 부모님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아요. 아마 그러셨을 거예요. 하지만 구사하는 영어의 수준이 높았을 리 없고, 제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에 따르면 당시 많은 사람이 미국에 올 때는 하와이에 들러서 한 달 정도 적응 교육을 받았대요. 아주 많이 힘드셨던 걸로 압니다. 제 어머니는 브린모어(Bryn Mawr) 칼리지에, 아버지는 웨인주립대(Wayne State)에서 공부하셨어요. 두 분은, 특히 어머니의 경우 항상 반에서 일등만 하시다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힘든 상황에서 영어로 공부를 하시는 게 아주 힘드셨던 걸로 압니다.

그로스: 그럼 자랄 때 집에서는 한국어로 대화하셨어요?

오: 네.

그로스: 한국어는 유창하세요?

오: 아뇨, 아뇨. 잘 못 해요. 제 언니는 저보다 다섯 살이 많아서 먼저 학교에 갔는데, 한국말만 하다가 학교에 가니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 거죠. 그 바람에 부모님이 충격을 받고 집에서 영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셨어요.

흥미로운 일인데, 이게 세대와 관련이 있어요.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국계 캐나다인들 중 제가 속한 세대(샌드라 오는 1971년생이다) 중에는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 다음 세대나, 저희의 자식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달라요. 가령 지금 30대들은 한국말을 잘 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세대, 정확하게는 제가 속한 세대는 첫 세대라 그럴 수도 있고, 적응을 해야 해서일 수도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들이 많죠.

한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접근한 그로스는 이제 좀 더 깊은 질문을 시작한다. 본인이 유대계 가정에서 자란 그로스는 종교적 배경, 특히 독실한 종교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그로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교회였나요?

오: 오마이갓– 정말 많이, 엄청나게 교회에 다녔어요. 일요일 아침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교회에 갔다가 오후에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교회에 갔죠. 휴– 저는 교회에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어요. 지금은 그랬던 경험에 감사하죠. 지금은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어린 시절 교회 경험은 제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신앙심이 아주, 아주 독실한 저희 부모님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지만,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되었어요.

그로스: 어떻게요?

오: 신화(myth)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니까요. 상징을 이해하게 도와주고, 세상에서의 삶에는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도와줘요. 그 영성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여기에서부터 정조준이다. 샌드라 오에게 교회 이야기를 물어본 것이 어떻게 결국 그의 연기 이야기로 돌아오는지 유심히 살펴보라.

그로스: 몇 살 때부터 교회에 안 나가기 시작했어요?

오: 집에서 떠나 살면서부터니까 열여덟 살 때죠.

그로스: 부모님이 기분이 상하셨나요?

오: 네. 네.

그로스: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오: 제가 저의 연기인생과 제 삶에서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생각하면 저희 부모님도 제가 제 삶에서 어떤 영적인 목적(spiritual purpose)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실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제 부모님께는 영적인 삶을 살고,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 목적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영적인 삶을 살고,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는 거 말이죠. 저는 그걸 제 방식대로 했어요. 부모님은 제가 일찍부터 그런 결정을 한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하셨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하는 일을 보시게 되었죠. 저는 부모님이 제게 가르치신 것들을 제 일에서 하려고 노력하고, 또 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로스는 쉽게 동의하거나 인터뷰이의 설명에 감동하는 인터뷰어가 아니다. 더 질문할수록 더 깊은 내용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질문이 그렇다.

그로스: 그렇지만 당신이 하는 연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시기는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가령 연기 생활 초반에는 큰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역할들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샌드라 오 역시 그로스가 잘못 알고 있는 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간다. 이 대목 같은 대화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다소 공격적이거나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게 서로 쉽게 동의하지 않는 대화의 결과물이다.

오: 음, 그건 사실이 아녜요.

그로스: 캐나다에서는 아시아계 역할을 하면서 시작하셨죠. 그런데 미국 영화에 출연하면서는 중요하지 않은(marginal) 배역을 하셨잖아요.

오: 네, 맞아요. 맞아요. 하지만 부모님이 제가 (당시) 하고 있던 연기나 제가 하려던 것을 보셨을 때는 (달라요). 저는 연기를 시작한 초기에 아주 아주 운이 좋았어요. 연기 학교를 졸업한 후에 한 영화에서 주연을 했고, TV에서도 주인공을 했고, 캐나다에서 가장 알아주는(A-list) 극장들에서 연극을 하고 (성공한 연기자가 할 일을) 모두 했어요. 제가 운 좋게도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저의 예술적 자아와 잠재력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그걸 확인하실 수 있었죠. 그래서 그분들의 생각도 "연기자라는 게 몸 파는 사람(prostitute)이랑 다를 게 뭐냐"–집에서 밥을 먹다가 이 말을 정말로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라는 데서 시작해서 지금은 연기자라는 게 어떤 건지 이해하시는 단계로 바뀌셨어요.

그로스: 잠깐, 초기에 하셨던 역할 중에 십 대 윤락여성이 있지 않았나요?

오: 맞아요! (웃음) 그거 맞아요. 오마이갓– 제가 그 역할을 한다는 걸 부모님께 차마 이야기하지 못해서 언니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했었죠. 제가 도저히 말할 수 없어서 언니가 부모님을 자리에 앉히고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자세히 말씀드려야 했어요.

그로스: 말씀하신 언니분이 시인이자 작가가 되신 그분인가요?

오: 맞아요, 맞아요. 언니는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하나죠.

샌드라 오가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사이드웨이즈(Sideways)'

그로스: 캐나다에서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신 후에 LA로 오셨죠. 그런데 그곳에서 에이전트가 얼굴이 예쁘지 않아 주연 역할은 할 수 없을 테니 성형수술을 받는 게 어떠냐고 했다고 들었어요. (웃음) 그러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서–아마 캐나다를 의미한 거겠죠?–그곳에서 유명해지라고. 그런데 이미 다 하셨잖아요.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하셨어요?

오: 제 에이전트가 성형수술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어요. (웃음) 하지만 에이전트가 내놓고 말하지 않은 것이 가장 파괴적인(destructive) 말이었죠. 결국 제 에이전트가 제게 하려는 말은 이거였어요. '아무도 당신 앞에서 이 말을 하지 않을 테니 제가 솔직하게 말해줄게요. 당신은 여기(헐리우드)에서 배역 찾기 힘들어요. 그러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유명해진 후에 뭔가를 들고 돌아오세요.'

저는 그때 이미 캐나다에서는 제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연기자였어요. 그런데 돌아가서 뭘 더 해야 미국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건지 몰랐어요. 정말 참담했습니다. 비참했어요.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와 앞서 이야기한 브루클린에서 전화로 '킬링 이브'의 주연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연관 지어 생각합니다.

그로스: 아, 그렇군요.

오: 저는 그 두 순간을 완전히 연관 지어 바라봅니다. 둘은 연결되어 있어요. (돌아가라는 얘기를) 공중전화에서 들었는데–그때가 1990년대 중반이어서 그래요 (웃음)–그 말을 듣고 제 멘토이신 스털라 거나르슨(Sturla Gunnarsson, 샌드라 오가 출연한 영화 'The Diary of Evelyn Lau'의 감독)에게 전화해서 펑펑 울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자아이로, 유색인종으로 자랐지만 캐나다의 중산층으로 자란 특권 때문에 잊고 살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 거죠.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아'라는 말로 말이죠. '너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어,' '네가 할 역할은 여기에 없어.' 제가 가장 괴로웠던 건 이 경험 많은 여성(에이전트)이 제게 도움이 되라고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는 것이었죠.

그로스: 당신이 아시안이기 때문에 배역을 못 받을 거라는 의미였나요?

오: 맞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길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면서 "아무개(아시아계 여배우) 있잖아요, 그 사람도 역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 사람도 오디션 조차 받지 못한 게 6개월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속으로 그랬죠. '그건 당신 잘못이지. 에이전트가 배우에게 역을 찾아주려고 열심히 뛰지 않아서 그런 거 아냐?'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에이전트는 저의 가치를 믿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기에 네가 할 일은 없고, 나는 네가 훌륭한 연기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너를 도와주거나 너를 위해 싸우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 셈이죠.

샌드라오는 2006, 2019년에 골든글로브상을 받았다. 

그로스: 그런 일을 겪고도 헐리우드에 남겠다는 확신은 어떻게 가지게 되었죠?

오: 아, 그런 일이 저를 막을 수는 없었어요 (Oh, that wasn't going to stop me). (이때 샌드라 오의 목소리는 아주 단호했다) 그게 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이 제게 충격을 준 건 맞지만, 저를 절대 막을 수 없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계속 연기를 하려고 하고, 계속 연기자로 살려고 하는 저를 막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그만큼 사랑했고, 그만큼 연기를 사랑합니다.


이 인터뷰의 전문:

Sandra Oh Takes The Lead In ‘The Chair’ And ‘Killing Eve’
In The Chair, Oh plays a professor who is the first woman and person of color to head the English department at a prestigious college. Oh says she “profoundly” understood the themes of the 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