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 즉 러시아가 현재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네 개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게 되고 우크라이나는 NATO, EU에 가입하지 못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실현 불가능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러시아군이 고전 중이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싸워도 조금 전진하는 식으로는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고 해도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다름아닌 러시아의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Wagner Group)의 운영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다. 돈바스가 그렇다는 얘기고, 헤르손이나 자포리자를 장악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한 가지,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경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주면 우리가 완전히 철수할 수 있다"라고 제안한다면 서방 국가 중에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내놓은 조건 한번 생각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나라가 없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리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네 곳을 합병하고, 우크라이나를 중립국으로 만들 거고, 어쩌면 몇 년 후에 다시 침공할 수 있어"라고 한다면 이는 전략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서방 세계 지도자들이 받아들이기 싫은 조건이 된다. 그런 휴전을 허용하느니 그냥 우크라이나와 점령지 반군에 지원을 계속해주는 것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이를 종합해보면 러시아가 이른 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전쟁 목표를 100%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는 푸틴.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The Japan Times)

푸틴이 그런 비현실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쟁을 계속하는 한 러시아는 더욱 불안해지고 지치게 된다. 러시아에게는 당분간 재정적, 군사적으로 이 분쟁을 지속할 자원이 있다. 하지만 그 자원도 무한한 게 아니다. 예산을 한 푼 사용할 때마다, 탄약 저장고, 무기 창고 하나가 비어나갈 때마다 러시아는 조금씩 약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당장 붕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러시아 연합이 무너지는 것은 서방 세계의 전략가들도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수천 개의 핵무기가 유출되고 세계 경제가 삐끗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러시아가 붕괴하지 않는다는 게 이 나라의 전략적 영향력과 누리고 있는 지위를 계속 유지할 거란 얘기는 아니다. 이 전쟁을 끝낸 후의 러시아는 훨씬 더 고립되고, 가난하고, 약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목표를 다 이룬다고 해도 말이다.

러시아는 과거 자신들의 주요 시장이었던 유럽 연합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것이고,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이며, 중국 정부의 지원에 지금보다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미래

여기까지 읽고 나면 러시아의 미래를 지나치게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러시아는 과거에도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는데, 이번 위기라고 해서 다를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은 붕괴하기 전에 여러 차례의 위기에서 살아남았고, 소련은 독일의 침공을 견뎌내고 세계 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섰다. 게다가 1, 2차 세계 대전과 비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무것도 아닌데 러시아가 다시 일어서서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는 게 왜 불가능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죽었다 살아나는 것도 무한히 반복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세계가 바뀌었다'이다. 과거 러시아가 패한 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나라가 누리던 이점이 있다. 많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 그리고 거대한 땅덩어리가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이점들은 현재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많이 상쇄되었다.

옛 러시아 제국과 그 뒤를 이은 소련은 미국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심각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출생률이 떨어져 현재의 노동력을 유지할 만큼의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나가 취업하고 있다. 출생률이 떨어진 서구 국가들은 이민에서 그 해답을 찾아 인구 피라미드의 빈 부분을 채우며 경제를 돌아가게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수십 년째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로 들어오는 대규모 이민은 존재하지 않으며,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던 산업, 경제 부문에서는 다른 나라들이 치고 들어오는 중이다. 다른 나라들도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고 있고, 러시아보다 싸게 생산하는 곳도 많다.

군사력과 영향력의 측면에서 러시아의 파워는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할 때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유럽, 일본, 중국 모두 본격적인 재무장에 돌입했다. 러시아가 이런 나라들에 상대할 수 있는 무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남은 것들일 것이다.

러시아와 각국의 방위비 지출 비교 (이미지 출처: Peter G. Peterson Foundation)

러시아도 군사력 일부는 회복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를 회복한다고 해서 과거처럼 미국이나 중국 수준의 군사 강대국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의 회복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소련이 남긴 유산으로 몇십 년을 버텨왔는데 푸틴은 그 유산을 저당 잡히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 유산을 다 날리게 생겼다.

하지만 이렇게 전략적으로 참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러시아의 정치인들에게는 전쟁을 여기에서 중단하는 게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러시아가 내걸었던 목표를 달성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는 것은, 특히 우크라이나의 동남부 네 지역을 확보하지 않고 철수하는 것은 전 세계에–그리고 그 누구보다 러시아 국민의 눈에–러시아가 패배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전쟁에서 패한 정부는 큰 위험에 처한다는 게 인류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러시아인들은 왜 많은 국민이 죽고 경제가 파괴되었는지, 왜 그렇게 하고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지 답을 찾으려고 할 것이고, 러시아 정치인들은 잘못을 떠넘길 대상을 찾을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군사적 승리를 이룩하지 못하면 러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빌딩에서 실족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아직 패배는 아니다. 전쟁이 이어지는 한 국민을 동원해 러시아 국기를 휘날리며 러시아군을 응원하게 강요할 수 있고, 계엄령을 통해 국민을,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정권을 교체하려는 시도는 적의 편에서 벌이는 것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도 계속할 수 있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저항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패했다는 사실이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 손해를 보는 일은 일어난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분명해도 우크라이나와 우방국은 여전히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중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전부 수복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과거의 영토와 주권을 모두 인정받고, NATO에 자유롭게 가입 신청을 하고, EU의 회원이 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서방 세계로부터 재건 비용과 현대화 비용을 지원받을 뿐 아니라, 유럽의 안보 및 경제 인프라의 일부로 변화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는 깊은 상처를 갖고 살아야 한다. 엄청나게 많은 국민이 희생되었을 것이고, 국가의 인프라는 극도로 파괴된 상황일 것이며, 지금 세대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번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를 안고 평생을 살 것이다.

리시찬스크 인근 응급치료소로 이송되는 우크라이나 병사 (이미지 출처: The Japan Times)

다만 내가 직접 만나본 우크라이나인들의 태도를 보면 그런 결과도 승리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라도 이기지 않으면 남는 옵션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분쟁은 동결되고, 엄청난 피해와 전사자를 남긴 이 전쟁이 몇 년 후에 (러시아의 재침공으로) 다시 시작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러시아에 승리는 아니겠지만, 우크라이나에도 승리는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나 서방 국가들의 지도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번 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미디어는 돈바스에서 일어나는 매일 매일의 전투, 매주 변하는 전황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 전쟁이 가져올 전략적 차원에서의 영향은 동부지역에서 땅을 몇 미터 더 빼앗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고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상대가 러시아 군대임에도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거라 생각는 이유도 이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전략적으로 이미 패했지만, 현재 벌어지는 싸움은 우크라이나 역시 패하느냐, 아니면 이 긴 터널 끝에서 승리라고 부를 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하느냐를 결정한다.

결론을 대신해서

요약해보자면, 러시아는 제국으로, 강대국으로 지내온 긴 역사가 있다. 러시아 제국이든 소비에트 연방이든 이 나라는 똑같은 자원을 사용해서 러시아의 힘과 영향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제국을 무너뜨린 것도 똑같은 일련의 실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같은 실수를 반복 중이다. 부패와 자만심, 지나친 확장이 그것이고, 핀란드 사람, 발트해 국가 사람, 폴란드 사람, 우크라이나 사람이 원하는 것은 러시아인이 되는 게 아니라 핀란드 사람, 발트해 국가 사람, 폴란드 사람,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남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그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끝이 나든 러시아는 전략적 목표의 대부분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프리마코프 독트린을 기준으로 봐도, 푸틴 자신이 내세운 목표를 기준으로 봐도 실패이고, 심지어 러시아가 군사적인 승리를 거둬도 전략적 패배다. 이는 이 전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이지만,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어떤 전략적 기준으로도 러시아는 이미 패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승리할지 패할지는 우크라이나 병사들과 서방 세계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