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의 언론인 로넌 패로우(Ronan Farrow)가 최근 HBO를 통해 선보인 다큐멘터리 'Surveilled(감시)'를 소개하려고 쓰기 시작했다. 패로우는 최근 현대 사회에서 감시가 얼마나 보편화되었는지를 경고하는 몇 편의 기사를 써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HBO의 다큐멘터리와 함께 이를 소개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로넌 패로우라는 인물을 먼저 소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면 그의 이야기를 훨씬 더 입체적이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편에서는 그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2편에서 그가 요즘 하고 있는 감시라는 주제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로넌 패로우는 많은 미국인들이 좋아하지만, 동시에 많은 미움을 받는다.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치부를 드러내는 언론인이 신변상의 위협이나 감시를 받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런데 로넌 패로우의 경우 그 문제가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다. 2020년 1월에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은 영국 코미디언 리키 저베이스(Ricky Gervais)는 이런 농담을 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세계 TV와 영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임원들이 모였습니다. 이분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죠. 바로 로넌 패로우 때문에 떨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로넌 패로우가 여러분을 찾아갈 겁니다. 여러분 잡으러 가는 겁니다."

헐리우드에서 로넌 패로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아버지는 큰 인기를 누린 감독이자 배우였던 우디 앨런(Woody Allen)이고, 어머니는 역시 유명한 배우 미아 패로우(Mia Farrow). 둘 다 각자 결혼을 여러 번 했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꽤 오래 동거 생활을 했는데, 이들이 함께 살던 시기에 낳은 유일한 자식이 로넌 패로우다.

로넌 패로우는 아버지의 성(Allen)을 따르지 않고 어머니의 성을 사용한다. 두 사람은 함께 살 때도 말이 많았지만, 엄마가 아이들의 양육권을 차지하는 과정도 요란했다. 미아 패로우는 우디 앨런을 만나기 전에 유명한 작곡가, 피아니스트 앙드레 프레빈과 결혼 생활을 했는데, 그때 입양한 아이들 중 하나가 한국에서 온 여자아이, 순이였다. 프레빈과 헤어진 후 앨런과 살게 되면서 이 여자아이(순이 프레빈)도 함께 살게 되었는데, 이때 순이의 나이가 10살이었다. 그런데 앨런은 미아 패로우와 12년 동안의 관계를 끝내고 헤어진 직후 순이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둘은 훗날 결혼한다.

당시에는 그루밍(grooming)이라는 표현이 지금처럼 널리 사용되지 않았지만, 순이가 열 살 때 아버지의 역할로 만난 우디 앨런이 그를 그루밍했다는 의심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둘 사이를 알게 된 미아 패로우는 분노하며 우디 앨런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이 일은 1990년대 헐리우드에서 악명높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디 앨런의 그루밍 의심에서 끝나지 않았다. 미아 패로우는 많은 아이를 입양했고, 우디 앨런은 그 아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했는데, 입양한 아이 중 가장 어린 여자아이인 딜런도 어린 시절 앨런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1980년대 말로 추정되는 우디 앨런, 미아 패로우의 가족 사진. 맨 왼쪽에 있는 아기가 로넌 패로우, 오른 쪽에서 세 번째가 순이, 우디 앨런(왼쪽에서 세 번째)의 품에 안긴 여아가 딜런이다. (이미지 출처: NBC News)

복잡한 남의 집안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마음은 없지만, 로넌 패로우가 헐리우드를 떨게 만드는 기자가 된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가 2016년에 쓴 글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면 이렇다:

예일 법대를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로넌은 신문에 글을 쓰다가 저널리즘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는 2014년, 유명 코미디언 빌 코스비(Bill Cosby)의 전기를 쓴 유명 언론인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금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헐리우드에서는 자상한 가장 연기로 유명한 빌 코스비가 1970년대부터 여성들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여 환각제를 먹이고 성폭행을 한다는 소문이 많았다. 코스비의 전기가 나온 2014년은 아직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피해 여성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코스비의 성폭력 행위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새로 나온 전기에서 코스비의 성폭력 혐의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된 로넌 패로우는 전기의 저자를 인터뷰하면서 그 얘기를 집중적으로 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인터뷰를 방송하려던 방송국(MSNBC)의 프로듀서는 로넌 패로우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반대했고, 결국 패로우는 인터뷰 중에 단 한 번의 질문만 하기로 했다. 로넌은 인터뷰에 앞서 전기의 저자에게 그 질문을 할 거라고 알려줬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저자는 놀란 듯 한동안 대답을 못 하더니 그런 혐의에 대해서 듣고 살펴봤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래서 책에 넣지 않았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2014년에 발간된 빌 코스비의 전기 (이미지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그 인터뷰가 나간 후로 빌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숫자는 60명으로 늘어났고, 코스비는 4년 후인 2018년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가 2021년,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절차상의 잘못이 있었다는 이유로 판결을 뒤집어 석방되었다.

로넌 패로우는 저자를 추궁하지 못한 그때의 인터뷰를 수치스럽게 기억한다.

그런데 그 인터뷰가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아 그의 누나 딜런 패로우가 어린 시절에 우디 앨런에게 성추행과 그루밍을 당한 일을 자기 입으로 직접 고발하면서 미국인의 관심은 로넌 패로우의 집안으로 다시 집중되었다. 로넌은 그 과정에서 우디 앨런과 같은 유명인의 홍보팀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졌는지 체험하게 된다. 우디 앨런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변호사, 상담 치료사까지 나서서 누나의 증언을 정신나간 소리, 혹은 누군가의—정확하게는 엄마 미아 패로우의—사주와 코치를 받아 그저 우디 앨런의 명성에 흠을 내기 위한 소문 내기로 취급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딜런 패로우는 우디 앨런의 과거 행동을 주요 매체를 통해 고발하려고 했지만, LA타임즈 같은 유력 매체들은 다루기를 거부했고, 뉴욕타임즈는 딜런의 글을 실어주기로 했지만, 지면이 아닌 온라인판에만, 그것도 짧게만 게재를 허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글이 화제가 되자, 우디 앨런에게는 지면을 통해—그것도 딜런의 글보다 두 배나 되는 길이로—반론의 기회를 줬다.

뉴욕타임즈를 구독하고 있던 나는 그 글과 당시의 논란을 기억한다. 그 스토리를 특별히 열심히 따라가지 않았던 내가 그때 받은 인상은 '누가 진실을 얘기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앨런의 변론이 더 신빙성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그 당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유명한 사람들, 내가 평소 신뢰할 만한 인물들이 우디 앨런의 무죄를 주장했고, 무엇보다 내가 당시 우디 앨런 영화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를 잘 모를 때 사람들은 진실을 알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쉽게 결론을 내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로넌 패로우도 비슷하게 편리한 출구를 찾았다고 한다. 자기 가족의 역사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는 게 싫어서 누나의 주장에 공개적,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속으로만 동의하면서 거리를 두었단다. 심지어 누나가 과거의 일을 밝히겠다고 했을 때 만류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로넌은 누나 딜런의 말을 믿었다. 어린 시절 우디 앨런이 누나에게 한 이상한 행동을 목격했기 때문이고, 변호사이자 기자인 자신이 직업정신을 발휘해 살펴봐도 누나의 말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로넌 패로우 (이미지 출처: Yahoo)

하지만 언론은 우디 앨런의 말을 믿었고, 세상이 자기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하는 걸 보면서 딜런은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로넌과 딜런의 어머니 미아 패로우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이 문제로 우디 앨런을 고소하는 것을 포기했고, 그러자 우디 앨런은 패로우 모녀를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고 한다.

로넌 패로우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성이 직접 혐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가 아주 많다. 어렵게 가해자를 고소해도 오히려 여성이 호된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 사회의 사법제도와 문화는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 여성의 일을 대신 해 주는 게 기자의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팩트를 전달하고, 그 팩트를 진지하게 다뤄야 할 책임이 있다. 오로지 기자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미아 패로우가 입양한 자녀 중에도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 패로우가 입양한 아이 중 하나인 모제스 패로우(Moses Farrow, 위의 가족사진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서 있는 동양 아이)는 훗날 어머니와 등지고 아버지를 옹호했다. 딜런이 어머니를 위해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게 모제스의 주장이다. 현재 가족 상담치료사로 일하는 모제스의 주장은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 우리가 팩트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로넌 패로우의 이런 경험은 그가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그 사건은 바로 미투 운동을 전 세계에 확산시킨 계기가 된 헐리우드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범죄다. 빌 코스비와 마찬가지로 헐리우드에서 쉬쉬하면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추적, 취재해 대대적으로 폭로한 건 뉴욕타임즈와 뉴요커, 두 매체였고, 그중 뉴요커의 기사를 로넌 패로우가 썼다.

로넌 패로우의 하비 와인스틴 취재는 미투 운동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이 장문의 르포 기사로 로넌 패로우는 헐리우드에서 두려워하는 기자가 되었다. 그가 취재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모두가 긴장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그런데 로넌 패로우는 그즈음 누군가 자기를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넌 패로우의 경고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