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우크라이나는 계속 방어전을 치러왔다. 전쟁이니 당연히 적을 공격하게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적이 침공 중인 유동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교전이다. 하지만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 지역을 점령한 후 이를 방어하는 형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치열한 교전이 전선을 따라 벌어지고 있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고 점령한 지역들은 분명해졌다. (아래 지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들이 그런 점령지다.)

지도 이미지 출처: BBC

어제 미국의 공영 라디오(NPR)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헤르손(Kherson)을 되찾기 위해 최초의 대규모 공격전을 벌이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NPR의 이 기사는 전쟁의 큰 그림이나 우크라이나군의 전략적 목표 등을 설명하지는 않는 대신, 기자가 군인들과 함께 러시아를 공격하는 최전선으로 찾아가 녹음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설명, 전달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취재 도중 멀리서 러시아의 정찰 드론이 뜬 것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보고 (기자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드론이 우리를 봤으면 포격이 시작될 수 있다"며 황급히 차량에 올라타 자리를 뜬다.

Ukraine’s army is waging its 1st major offensive against Russia to retake Kherson
Could Ukraine’s army retake the strategic southern city of Kherson? Officers and soldiers near the front line say the counter-offensive is already underway.

하지만 그렇게 서둘러 움직이다가 차량이 균형을 잃고 나무를 들이받았다고 한다. 녹음된 내용에서는 작게 "퍽!" 하는 소리만 들리지만 취재 기자(Brian Mann)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운전하던 장교는 사망하는 대형 사고였다. 전쟁에서 군인들이 얼마나 쉽게 죽고 다치는지 보여주는 최전방의 취재가 된 셈이다.

압축된 주사기가 만들어낸 교착상태

여름이 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신문의 톱 헤드라인이 되는 일이 뜸해지고 있다. 이 전쟁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지만,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다시피 했던 지난봄과는 다른 분위기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전선이 사실상 고착된 후로는 몇 달 전처럼 다이내믹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측의 피해가 적은 것은 아니다. 전선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많은 병력이 죽거나 다치는 소모전(war of attrition)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전문가들이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다.

왜 우크라이나 군은 서방 국가들의 확실한 무기 지원을 받으면서도 전쟁 초기와 같은 전과를 내지 못하는 걸까? 당시만 해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에 "얇게" 퍼져있었다. 그 결과 화력이 집중되지 못하고, 무엇보다 보급로가 길고 불안해서 우크라이나군의 기습에 번번이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넓게 퍼졌던 러시아군은 상대적으로 작은 지역에 밀집해있다.

어떤 이는 이를 주사기로 설명한다. 주사기의 끝을 막고 밀대를 누르면 처음에는 쉽게 들어가다가 공기가 압축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것처럼, 침공한 러시아군이 동부와 남부 전선에 "압축적으로" 모여있는 상황에서는 보급로도 짧고 화력도 집중할 수 있어서 잘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 버티고 있다고 해서 러시아군이 현재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떠나 진격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밀집의 이점'은 사라지고 다시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진격은 힘들어지고, 그렇다고 러시아군이 현재의 위치에서 다시 전선을 서쪽으로 옮기는 공세를 취하기도 힘든, 전형적인 교착상태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과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웠던 것처럼, 혹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싸웠던 것처럼 10년 넘게 이어지는 전쟁이 될까? 많은 사람들의 기대처럼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 전개를 쉽고 상식적으로 설명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덴마크의 밀리터리 분석가인 앤더스 퍽 닐슨(Anders Puck Nielsen)이 최근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Three ways Ukraine can win the war)"이라는 영상을 올려서 다시 한번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는 그만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이고, 특히 이 세 가지 방법은 영상에서도 밝히듯 우크라이나의 국방부 장관 올렉세이 레즈니코프(Oleksii Reznikov)가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올렉세이 레즈니코프 (이미지 출처: 스카이뉴스 유튜브)

아래 내용은 닐슨이 설명한 레즈니코프의 견해를 옮긴 것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약간의 편집을 하고 설명을 추가했다.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세 가지 방법

나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특정 전술이나, 어디를 공격하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개념적인 차원의 설명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내야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게 하는 것만이 승리하는 방법이라면 우크라이나가 과연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 논의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논리라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몰아낼 수 없다면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지나치게 좁게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영토 전쟁으로 바뀐 듯하다. 흥미로운 건 원래 이 전쟁은 영토 전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개전 초기만 해도 누구나 푸틴의 목표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에 있다고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젤렌스키 정부를 제거하고 친 러시아 정권으로 교체해야 러시아가 승리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그걸 막아내면 우크라이나의 승리였다.

하지만 3월에 러시아가 돈바스(Donbas,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이 전쟁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대로 영토 전쟁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얼마나 많은 땅을 빼앗느냐, 혹은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영토를 얼마나 찾아오느냐가 전쟁의 목표가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국경선의 변화가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세 가지의 방법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전쟁의 진행을 잘못 이해하게 된다. 참고로, 내가 설명하는 이 세 가지 방법은 우크라이나의 국방부 장관 올렉세이 레즈니코프(Oleksii Reznikov)가 한 인터뷰에서 설명한 것이다. 나는 그 인터뷰를 직접 보지 않았고 슈테판 코샤크(Stephan Korshak)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언급한 것을 읽었다. 슈테판의 이번 전쟁에 관한 업데이트는 아주 훌륭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팔로우하길 권한다.

내가 소개하려는 세 가지 승리 방법은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지만 레즈니코프 국방장관도 비슷한 말을 했음을 명심하시길 바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도 그렇게 생각하고 전쟁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다.

1. 점진적 과정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러시아 군대를 2월 23일 침공 이전의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그 후에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토전쟁의 관점이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병사를 마지막 한 명까지 영토에서 몰아내고 모든 땅을 되찾겠다고 하는 이유다.

만약 이게 유일한 승리 방법이라면 우크라이나가 과연 그렇게 할 만한 압도적인 힘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빼앗은 땅을 지킬 수 있다면, 그리고 돈바스 지역에서 야금야금 전진할 수 있다면 러시아는 영토를 획득하고 있고, 전쟁에서 서서히 이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앤더스 퍽 닐슨(Anders Puck Nielsen)

2. 돌연한 붕괴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이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러시아가 돌연 싸우기를 멈추는 것이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는 갑작스러운 승리를 하게 된다. 즉, 우크라이나가 서서히 영토를 되찾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러시아군이 내부적으로 붕괴하는 상황이다.  

비슷한 좋은 예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서구를 몰아낸 것이다. 탈레반은 엄밀하게 말해 미군과 싸워서 영토를 회복한 게 아니다. 미국이 이 전쟁은 그만하겠다며 병력을 불러들인 것이다. 탈레반이 이렇게 하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렸지만, 우크라이나군은 탈레반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러시아는 서구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입은 것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보다) 훨씬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

내 이야기의 요점은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싸워서 영토를 회복해야만 승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러시아가 큰 손실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영원히 계속될 전망인데, 그러면 러시아가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결정하는 시점이 오게 된다.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러시아군을 약화시키고 러시아 사회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대가가 너무 크다. 따라서 러시아가 이런 결정을 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많은 영토를 한 번에 회복하게 된다.

이것은 사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부를 떠나기로 한 결정과 아주 흡사하다. 우크라이나는 북부 지역을 모두 치열한 전투를 통해 회복한 게 아니다. 러시아군이 핑계를 대고 후퇴를 한 결과였다. 따라서 러시아가 전쟁 노력을 돌연 중단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두 번째 방법이 된다.  

3. 푸틴의 실각

세 번째 방법은 돌연한 붕괴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두 번째 방법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이 경우는 푸틴이 러시아 내에서 힘을 잃는 경우다. 그가 완전히 실각하고 쫓겨나는 것일 수도 있고, 내부적인 압력이 거세어져서 결정권을 더 이상 독점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브라이언 테일러와의 대담에서 논의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 방법의 핵심은 러시아에서는 지도자가 바뀌면 정책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러시아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개인적인 관심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면서 연구도 하고,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 학술적인 흉내를 낸 아주 장황한 글을 쓰기도 했다.

물론 푸틴의 그런 견해는 다른 러시아인들도 대체적으로 공유하기는 하지만 푸틴은 개인적인 열정을 갖고 있다. 모든 러시아인들이 푸틴처럼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만약 러시아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면 이를 핑계로 전쟁을 멈추고 모든 것을 푸틴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푸틴의 개인적 집착과 실수가 러시아가 가진 문제의 원인이라고 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후 했던 것과 비슷하다.

미국의 첩보 분석에 따르면 푸틴은 건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영원히 산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진 출처: 뉴라인즈)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의 중요한 차이는 푸틴이 결정을 내리느냐, 아니면 푸틴이 (부분적으로라도) 권력을 잃느냐에 있다. 나는 이 두 개의 시나리오가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푸틴이 (두 번째 방법에서 이야기한) 결단을 내릴 상황은 분명히 존재하고, 푸틴은 그런 결단을 내리고도 무사할 수 있다.

푸틴을 제거하는 쿠데타는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러시아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어떤 종류로든 정권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리로 가능 과정을 단축시킬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전투를 통한 점진적인 방법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가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빠르게 진행되는 일은 일어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수십 년이 지나가기도 하지만, 일주일 동안 수십 년이 일어나기도 한다" –블라디미르 레닌

위의 시나리오들 중에서 어떤 것이 현실화될지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있다. (우크라이나가 힘이 있다면) 가장 빠른 승리 방법은 첫 번째 방법일 거다. 하지만 그만큼의 힘이 없다면 두 번째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몰아낼 만큼의 힘은 없어도 소모전을 통해 러시아군에 장기적인 문제를 초래할 만큼의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그 정도의 힘도 없다면, 그리고 러시아군이 장기전을 버틸 수 있다면? 푸틴이 죽을 때까지 버티는 방법이 있다.

푸틴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