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미국 시각)에 소셜미디어에 퍼진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도시에서 열린 공화당 집회에 참석해서 연단에 선 모습을 찍은 장면인데, 트럼프의 사타구니 지점을 확대해보니 남자 양복바지에 당연히 있어야 할 지퍼가 보이지 않았다. 지퍼가 있어야 할 부분의 바지는 마치 엉덩이가 있는 것처럼 매끈하고 불룩해 보였다.

"트럼프가 바지를 거꾸로 입었다"라는 말은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후까지 만 하루 동안 인터넷에서 바이럴이 되었고, 매스미디어도 다시 한번 트럼프 조롱에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상은 조작된 영상이다.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들여다보면 마치 솜씨 없는 포토샵 기술이 들어간 느낌을 받지만, 적어도 그걸 처음 본 나는 그 영상을 사실이라 생각했다.

물론 누가 "그 영상이 100% 사실이라 믿느냐"고 물었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는 못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트럼프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침대에 누워서 햄버거를 먹는다는 사실을 폭로한 책에 대해서 읽어본 적이 있고, 자신의 체중을 많이 의식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태닝 스프레이를 (어설프게) 사용해서 창백한 피부색을 가린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도 나는 일일이 조사해 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사실일 수도 있고, 정말로 트럼프의 말처럼 "리버럴 미디어의 가짜뉴스"일 수도 있지만, 평소 트럼프의 모습과 언행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는 그것들이 모두 가짜뉴스일 수도 있지만, 굳이 그걸 확인하는 데 내 시간을 쓰고 싶은 인물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사실인지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웃긴 것들'을 모아두는 폴더에 던져두었다.

도시 전설 vs. 스놉스

트럼프가 거꾸로 입었다는 바지의 진실은 쉽게 알게 되었다. 저녁에 이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역시 트럼프를 싫어하는) 아내에게 했더니 바로 검색을 해보더니 "신문 기사에는 그 영상이 조작된 거라는데?"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매체가 어떻게 진위를 밝혔냐고 하니까 "스놉스에서 가짜라고 밝힌" 걸 인용했다고 한다.

스놉스(Snopes.com)라는 웹사이트는 언뜻 보면 (가령 버즈피드처럼) 클릭할 만한 콘텐츠를 가득 차려놓고 광고로 돈을 버는 흔한 웹사이트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주요 통로로 사용된 페이스북이 거센 비판에 직면했을 때 외부기관(third-party)들에 팩트체킹을 의뢰했을 때 선정한 소수의 공신력 있는 팩트체킹 사이트 중 하나가 바로 스놉스였다. (스놉스는 2019년에 페이스북과의 파트너십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스놉스의 역사는 웬만한 인터넷 기업의 역사보다 길다. 1994년에 데이빗 미켈슨, 바바라 미켈슨 부부가 세상에 떠도는 도시 전설(urban legends)의 진위를 찾아내는 '도시전설 레퍼런스 페이지(Urban Legends Reference Pages)'라는 팩트체킹 사이트를 시작한 것이 스놉스의 기원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봤을 다양한 괴소문들(가령 한국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지는데 그런 이유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참고로, 여기에 대해서는 말콤 글래드웰이 '티핑포인트'에서 자세하게 설명했고, 이 책에 영감을 받은 칩 히스와 댄 히스 형제가 이를 발전시켜 '스틱!(Made to Stick)'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데이빗과 바바라 미켈슨은 전통적인 사회에서 많이 돌던 괴담과 근거 없는 얘기, 잘못된 의학상식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퍼지는 이야기들의 기원을 찾아내어 진위를 밝히는 일을 1990년대에 시작했다. 스놉스라는 낯설게 들리는 이름도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 'Snopes Trilogy'에 등장하는 가족의 이름으로, 데이빗 미켈슨이 (웹 이전에 사용되던) 유즈넷에서 사용하던 유저네임이었다고 한다.

스놉스 웹사이트에 가보면 "트럼프는 집회에서 바지를 거꾸로 입지 않았다"고 기사의 제목부터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진위를 알려달라는 문의가 빗발치자 무려 90분의 분량의 영상 전체를 다 살펴보았고, 트럼프가 바지를 똑바로 입고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누가 그 영상을 조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스놉스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살피고 진위를 밝혀내는 것이다.

간단하지 않은 진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게 참, 거짓으로 갈리지는 않는다. 가령 최근 미국에서는 엘리 켐퍼Ellie Kemper라는 ('오피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로 제법 알려진) 배우가 인종주의 단체로 유명한 KKK와 연관이 있는 '베일을 쓴 예언자(Veiled Prophet)'라는 단체의 무도회에서 퀸에 뽑힌 적이 있다는 보도가 나와서 곤욕을 치렀다. 많은 매체가 사실로 보도한 이 뉴스에 대해 스놉스는 진위가 섞여 있다며 'Mixture'라고 판단했다. 켐퍼가 참여한 무도회는 문제의 단체가 개최한 것이고, 그 단체는 1979년까지 흑인의 참가를 거부한 인종주의 단체는 맞지만, KKK와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고, 19세기에 KKK와 비슷한 복장을 사용한 적이 있지만, KKK의 흰 고깔 모자와 가운은 20세기에 등장했다는 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팩트체크 매체인 뉴스톱이나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에서도  이렇게 절반의 사실, 혹은 대체로 사실, 대체로 거짓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흔하다. 가짜뉴스가 힘을 얻는 경우가 이렇게 사실과 섞인 경우들이다. 가령 오바마 행정부 시절 트럼프가 열심히 퍼뜨린 "오바마는 무슬림"이라는 가짜뉴스는 오바마의 친부가 오바마에게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이슬람식 이름을 지어줬고, 나중에 오바마의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오바마의 양부)도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이 미국에서 자라며 개신교회에 출석해온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말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바마를 싫어하고 그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은 오바마가 정말로 무슬림인지 확인할 시간이나 정성은 없지만 '충분히 그럴 법한 일'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심지어 오바마의 임기 말이 되어갈 때도 공화당 경선 투표에 나선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 54%가 오바마를 무슬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결과마저 "미국인의 59%가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생각한다"는 가짜뉴스가 되어 퍼져나갔다).

나는 왜 속았을까?

이 글을 쓰는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짜뉴스와 관련한 글을 기고하고, 번역해왔다. (그중에서도 언론재단에서 발행한 휘트니 필립스의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는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글이다. 여기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어설픈 조작 영상을 보고 별 의심 없이 트럼프가 바지를 거꾸로 입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도대체 내가 왜 속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그 조작된 영상이 내가 트럼프에 대해서 이미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옷을 잘 못 입고, 자기관리를 못하는, 비만한 인물)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 사실 바지를 거꾸로 입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신발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발짝을 신고 외출하거나 속옷이나 티셔츠를 뒤집어 입기는 쉽지만, 지퍼가 앞에 있는 바지는 "실수로" 앞뒤가 바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트럼프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에 부응하자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만드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트럼프의 바지가 뚱뚱한 체형에 맞춰 고무줄이 달린 특수한 바지라거나, 연설을 앞두고 바지에 음식을 쏟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뒤집어 입었다는 '가설'이 그거다.

전자의 경우는 '트럼프는 비만이다'라는 생각과 '제정신이 아니거나 노망이 들었다'는 생각에 부합한다. 트럼프 비만 체형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고, 소독제를 주사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이는 게 어떠냐는 그의 주장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트럼프가 그만큼 멍청하다"는 내러티브에 동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뚱뚱해서 고무줄 바지를 입는데, 그러다 보니 깜빡하고 뒤집어 입었다는 가설로 논리적 점프를 하기는 어렵지 않다. 후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트럼프가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 햄버거를 먹으며 TV를 본다는 주장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가 잠이 들면서 트위터에 헛소리를 적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기관리가 안되는 트럼프라면 충분히 음식을 쏟았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바지를 돌려입었을 거라고도 믿을 수 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트럼프라는 인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의심("benefit of doubt")해보는 노력과 시간을 쓸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트럼프에 대한 나쁜 견해는 일단 믿는 것이 기본값(default)으로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진실-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

앞서 언급한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2019년에 '타인의 해석(Talking to Strangers)'이라는 책에서 티머시 R. 레바인 교수의 진실-기본값 이론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쉽게 사기를 당하고 거짓말, 가짜뉴스에 속는 이유는 인류의 기본적인(default) 작동방식이 타인의 말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만약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진위를 의심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다.

가령 나는 "OO신문의 아무개 기자입니다"라는 (모르는 사람의) 이메일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그 사람이 그 신문의 기자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그의 이메일 주소에 그 매체의 도메인 이름이 들어있는지를 살펴보고, 구글에서 그 기자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일 정도다. 물론 그의 이메일을 해킹해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자가 내게 묻는 내용이 일상적인 인터뷰 수준이라면 굳이 그런 상황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일일이 확인할 만한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사회에서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서로를 신뢰하는 것을 기본값으로 가진 사회와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 신뢰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인류의 대부분이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사기꾼을 뿌리 뽑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글래드웰은 그런 사기꾼들은 사회가 신뢰를 기반으로 돌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사기꾼을 완전히 없애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 위해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엄청나서 차라리 간간이 등장하는 사기 사건을 감수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는 거다. 인류사회가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가짜뉴스의 진짜 타겟

버즈피드뉴스의 분석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지난 2020년 미국 선거 기간 중에 트럼프의 포스트에 가짜뉴스가 들어갔을 경우 사실을 알리는 라벨을 붙였지만 가짜뉴스 확산 방지에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트럼프의 거짓 주장을 온라인에 퍼다 나르는 사람은 트럼프 지지자일 경우가 큰데, 그들이 트럼프의 주장과 (트럼프가 비판해온)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정보 중에서 어느 쪽을 믿을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비록 똑같은 빈도는 아니더라도) 진보적인 유권자,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가짜뉴스에 속는 사람들은 가짜뉴스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즉 우리 모두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되기까지 온라인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 연구한 (위에서 언급한) 휘트니 필립스에 따르면 트럼프를 띄워준 밈(meme)과 가짜뉴스는 반드시 트럼프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속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온라인 트롤(troll)들의 장난이 트럼프 지지자들과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사 기자들에게 잘 먹혔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바지를 돌려입지 않았지만, 그가 제대로 입었는지 아닌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 사실 여부가 내가 가진 그에 대한 의견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겨냥하는 대상이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