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는 내러티브를 좋아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팀이 없는 스포츠의 결승전을 볼 때 사람들은 종종 약팀("underdog")을 응원한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강자에 도전하는 약자를 보면서 자기가 용기를 얻을 뿐 아니라, 강자에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느끼는 묘한 감동이 있다. 특히 약자가 불리함을 이기고 강자를 이길 경우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글래드웰의 설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투자 대비 효과다. 경기 내내 한쪽을 응원하는 것은 일종의 감정적인 투자인데, 누구나 이길 것으로 예상한 팀이 이길 경우 만족감은 그다지 크지 않은 반면, 패할 것으로 생각했던 약팀이 예상을 뒤엎고 승리할 경우 그 만족감은 아주 크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뉴욕시장 경선에서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인 33세의 인도계 무슬림 남성 조란 콰메 맘다니(Zohran Kwame Mamdani)가 모두가 승리를 낙관했던 뉴욕 정치계의 거물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 전 뉴욕주지사를 넉넉한 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환호한 사람들은 뉴욕의 맘다니 지지자들만이 아니다. 미국의 다른 도시 주민들은 물론, 캐나다, 유럽에서도 "내가 맘다니를 찍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내가 뉴욕 시민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맘다니의 승리를 축하했다.

맘다니는 2위인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7% 넘게 넉넉하게 따돌리며 승리했다.

뉴욕 밖에 사는 사람들은 뉴욕의 정치를 잘 모를 뿐 아니라, 뉴욕 시장 선거에서 누가 이긴들 자기 삶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즈와 맞붙는 팀을 응원하듯, 맘다니에게 감정이입했다.

사람들은 뉴욕이 진보적인 도시라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벌어지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시위가 워낙 크고 요란한 건 사실이지만, 뉴욕 유권자들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진보적인 건 아니다. 주민들의 정치적 견해가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뉴욕은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은 도시고, 백만장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다.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을 시장 후보로 선택했다는 건, 남부의 가난한 백인이 뉴욕 출신의 부동산 재벌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다.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사실만큼,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이다. 뉴욕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어 세계에서 유대계가 두 번째로 많이 사는 도시다. 인구의 약 11%가 유대계이지만, 실제로 뉴욕에서 느껴지는 유대계의 존재감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하는 경제인뿐 아니라, 작가, 배우, 교수 등 유대계 지식인들의 발언권도 아주 크고, 연예계도 다르지 않다. 경사를 축하할 때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도 "마즐 토프(mazel tov)!"라는 유대인들의 표현을 사용하는 게 흔할 정도다. 그런 도시에서 무슬림을 민주당 후보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란 맘다니가 잘 알려진 인물도 아니다. 뉴욕에서 태어나 자라고, 뉴욕에서 기자, 앵커로 활동하는 MSNBC의 크리스 헤이즈(Chris Hayes)는 "나는 뉴욕에 살면서 하루 16~20시간을 뉴스를 읽고 정치 얘기를 하는 사람이지만, 조란 맘다니라는 뉴욕주의원(Assemblyman)이 있다고 들어본 기억이 있을 뿐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런 사람이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다는 것도 몰랐다."

사실 유권자들은 뉴욕 시장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그것도 올해처럼 대통령 선거나 중간 선거가 없는 해에 있는 경선—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런 경선에 출마한 이름 없는 후보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더욱 찾기 힘들다. 조란 맘다니는 그런 무관심을 뚫고 유권자들, 특히 45세 이하의 유권자들을 대거 투표소로 향하게 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조란 맘다니는 어떤 사람이길래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을까?

선거운동을 하는 조란 맘다니

이름이 어려운 후보

조란 맘다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아버지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는 인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에서 태어나 영국을 거쳐 아프리카에 정착했다. 그 후 탄자니아와 우간다에서 교육을 받다가 1963년 아프리카에서 촉망받는 학생들을 미국으로 데려다가 교육시키는 프로그램("Kennedy Airlift")의 후원으로 미국에 도착해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마흐무드는 책상에서 연구만 하는 정치학도가 아니었고, 1965년 미국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앨라배마주 몽고메리로 가서 민권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적도 있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있는 우간다 대사에게 전화했다가 "왜 다른 나라의 문제에 끼어드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마흐무드는 민권운동은 미국의 국내 문제가 아니라, 우간다에도 적용되는 인류 보편적인 문제라고 반박했다.

터프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취득한 마흐무드는 1972년에 우간다로 돌아가 마케레레 대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그즈음 등장한 우간다의 악명 높은 독재자 이디 아민에 의해—인도계라는 이유로—국외 추방을 당한다. 그 후 한동안 국적이 없는 난민이 되어 영국과 미국,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전전하며 연구 활동을 했고, 나중에 우간다로 돌아가 인도계 여성 미라 나이어(Mira Nair)를 만나 결혼한다. 두 사람이 1991년에 우간다에서 낳은 아들이 조란 콰메 맘다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와 마케레레 대학교에서 식민주의(colonialism)와 후기식민주의(post-colonialism)를 가르친 조란 맘다니의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어머니 미라 나이어다. 미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현재 프로덕션 회사를 운영하는 나이어는 2002년 '몬순 웨딩'(Monsoon Wedding)을 감독해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트럼프 지지자를 비롯한 미국의 극우, 보수층에서는 이런 맘다니의 가족 배경을 두고 "돈 많은 진보주의자  부모 밑에서 자란, 이렇다 할 직업 없는 리버럴 청년"으로 묘사한다. 그런 공격이 11월에 있을 뉴욕 시장 선거(본선) 결과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민주당 경선에서는 별 영향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에서 맘다니를 환영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 내 주류 세력(party establishment)이 지지한 후보는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였다. 쿠오모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고, 뉴욕주의 법무장관을 지낸 후, 2011년부터 10년 동안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 중진 중의 중진이다. 하지만 2021년, 열 명이 넘는 여성들이 쿠오모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그들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면서 쿠오모는 주지사직에서 사퇴했다. 팬데믹 기간 중에 뉴욕주 요양원에서 발생한 집단 사망을 은폐하려던 정황도 드러나 사면초가에 몰린 쿠오모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쿠오모에게 이번 뉴욕 시장 선거는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기회였다. 주지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자리이기는 해도,  루디 줄리아니는 뉴욕 시장의 경력으로 대선에도 뛰어들었을 만큼 "세계 최고의 도시 시장"이라는 타이틀은 작은 게 아니다.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의 선거운동

게다가 재선을 노리는 현 뉴욕시장 에릭 애덤스(Eric Adams)는 각종 부패와 거짓말이 드러나면서 정치적으로 큰 곤경에 빠졌다가 연방 검찰이 부패 혐의 기소를 취소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보도에 따르면 애덤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트럼프였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의 뉴욕 시장이 트럼프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분노하면서 결국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11월 재선을 노리고 있다. 아무리 불명예 퇴진을 한 쿠오모라고 해도 민주당이 지배하는 뉴욕에서 부패 혐의를 벗기 위해 트럼프와 손잡은 현직 시장을 물리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앤드루 쿠오모는 뉴욕시 주민의 5.5%를 차지하는 이탈리아계를 대표하는 정치인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유명한 뉴욕 주지사 마리오 쿠오모(Mario Cuomo, 1983~94년 재임), 동생은 CNN의 인기 앵커였던 크리스 쿠오모(Christ Cuomo)다. 그는 주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뉴욕시 북쪽에 있는 유서 깊은 태펀지대교(Tappan Zee Bridge)를 새로 만들면서 다리 이름을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마리오 M. 쿠오모 주지사대교(Governor Mario M. Cuomo Bridge)로 바꿔서 뉴욕 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엄청난 세금을 들여 만든 다리를 주지사가 마치 자기 가문의 다리인 것처럼 멋대로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마리오 M. 쿠오모 주지사대교'로 이름을 바꾼 태펀지 대교

하지만 앤드류 쿠오모는 개의치 않았다. 자기 집안은 뉴욕주를 대표하는 집안이고, 뉴욕시는 자기 집안의 도시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뉴욕 시장 경선에 나선다고 하자,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 같은 유명 정치인부터 빌 애크먼(Bill Ackman),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전 뉴욕시장 같은 갑부들까지, 뉴욕의 권력자들이 줄을 서서 지지를 선언하고 거액의 기부금을 냈다.

그런 쿠오모에게 조란 맘다니는 이름도 알 필요 없는 듣보잡이었다. 그래서 그는 맘다니라는 이름을 "만담니," "만다니"로 자꾸 틀리게 불렀고, 고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상대 후보의 이름조차 똑바로 부르려 하지 않는 것을 단순한 실수가 아닌, 민주당 주류 세력의 오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쿠오모의 무성의하고 무례한 태도는 맘다니에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었다.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만난 쿠오모(왼쪽)와 맘다니(오른쪽)

'뉴욕에서 벌어진 일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