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내부고발자'라고 번역하는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라는 말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꽤 늦게 영어에 등장했다. 미국 소비자 보호 운동의 대명사인 랠프 네이더가 1970년대에 만들어냈다고 한다. (네이더는 2000년 미국 대선에 출마해서 돌풍을 일으키며 진보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를 당선시켰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네이더는 이미 1970년대부터 대선에 꾸준히 출마했기 때문에 그냥 민주당이 인기가 없어 패배한 거라고 보는 게 맞다).

네이더가 휘슬블로어라는 말을 굳이 만들어낸 것은 그 당시에 이들을 부르던 'snitch'나 'informer' 같은 표현이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하던 소비자 보호 운동의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전략이었다. 힘이 세진 기업들이 소비자 모르게 하는 행동을 감시, 고발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정을 잘 아는 직원과 같은 내부자들의 제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밀고자'나 '배신자' 같은 사회적 낙인을 찍는 분위기에서는 이런 정보를 외부에 알릴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따라서 그들이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네이더의 전략은 성공했고, 사회는 새로운 영웅들의 탄생을 종종 목격하게 되었다.

1977년, 랠프 네이더는 에어백 의무화를 반대하는 의원들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내부고발자가 똑같지는 않다. 가령 조직이 가진 문제를 직접 만들어낸 사람이 조직 내에서 위치가 흔들리자 정보를 들고 뛰쳐나와 "고발"하는 모습을 두고 사회적인 의인이라고 부르기는 망설여진다. 사회는 내부고발자들이 들고나온 정보가 고맙기는 하지만 그들의 의도가 과연 사회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없지 않다. 첼시 매닝이나 에드워드 스노든의 경우 캐릭터의 선(Good)-악(Evil), 질서(Lawful)-혼돈(Chaotic)을 보여주는 차트에서 질서와 선(Lawful Good)에 가깝지만, 그들이 공개한 정보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단순히 업계의 비리를 폭로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회적 혼란을 불러왔다. 특히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아산지의 경우는 완전한 혼돈과 중립(Chaotic Neutral)에 속하는 인물로, 현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부정하는 괴짜로 밝혀지고 개인적인 문제도 지적되면서 사람들의 지지를 많이 잃었다.

그렇게 봤을 때 지난 몇 주 째 미국을 흔들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페이스북 파일' 탐사보도를 가능하게 했던 페이스북의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은 전형적인 '질서와 선'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하우겐은 지난 일요일 월스트리트저널과 CBS 방송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는데, 그걸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제목은 "페이스북의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겐은 기업을 고치고 싶은 것이지 해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The Facebook Whistleblower, Frances Haugen, Says She Wants to Fix the Company, Not Harm It)"였다. 페이스북을 완전히 추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하우겐의 이런 접근법이 틀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하우겐은 팟캐스트에 출연해서도 자신은 페이스북을 (독점혐의로) 쪼개는 것에 반대한다며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제시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우겐은 왜 페이스북에 치명타를 입힌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내부자료를 월스트리트저널과 의회, 그리고 증권감독위원회(SEC)에 보냈을까?

아래는 하우겐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일요일에 나온 CBS 방송의 60 Minutes 인터뷰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그리고 이 신문의 팟캐스트 인터뷰 등을 종합한 내용이다.

음모론, 친구, 페이스북 입사

올해 37세의 프랜시스 하우겐은 학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구글에 입사해서 당시 구글이 페이스북의 대항마로 내세운 '구글 플러스(Google+)'의 개발과 구글 북스(Google Books) 알고리듬 개발에 참여했고, 회사의 지원으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후 구글에 복귀해서 일하다가 2014년에 병 때문에 퇴사했다. 병 치료에 집중한 후 다시 현업에 복귀한 하우겐은 옐프(Yelp)와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일했다. 페이스북에서 하우겐의 채용에 관심을 보인 것은 그가 핀터레스트를 나온 2018년이었고, 2019년 6월에 입사하게 된다.

페이스북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겐

하우겐은 자신이 병 치료를 위해 일을 쉬던 중에 자신의 병간호를 해주던 사람과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이 친구가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온라인에 돌아다니던 음모론("조지 소로스가 세상을 조종한다")에 빠져서 도저히 대화를 못 할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이 페이스북에서 일하게 된 계기였다고 설명한다. 페이스북에서는 Civic Integrity(시민사회보존)라는 부서(division)가 페이스북이 발생시킬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찾아내어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 허위정보에만 집중하는 팀을 만들면서 하우겐을 채용했다는 것이다. 그게 2019년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2019년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리고 그럴 거라고 다들 예측했던) 2020년 미국 대선을 한 해 앞둔 시점이다. 페이스북은 말하자면 대선 관련 허위정보 확산을 막기 위해 하우겐의 팀을 만든 것. 하우겐은 페이스북에서 일을 시작한 첫 달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16년에 허위정보로 그토록 큰 홍역을 치른 기업이 이제까지 뭐 하고 있다가 또 다른 대선을 일 년 앞두고 담당 부서를 만든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허위정보를 담당하는 자신의 팀이 엔지니어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포함해 고작 네 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할 프로젝트

이를 깨닫게 된 하우겐은 상사에게 이를 지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페이스북에서는 당신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자원으로도 엄청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걸로 맡겨진 일을 해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하우겐의 팀은 우선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페이스북이 가진 프로덕트들(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광고 등)을 나열하고, 각 프로덕트가 처한 가장 심각한 위협 요인(증오 발언, 허위정보, 온라인 괴롭힘, 타인 사칭, 투표 방해 등)을 10개씩 적었더니 약 60, 70개의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그다음에는 문제별로 심각성을 색깔로 표시했는데, 녹색(양호)은 하나도 없었고, 대부분 적색(심각)과 오렌지(주의)였다는데, 적색으로 표시된 문제가 너무 많아 짙은 적색과 적색을 구분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페이스북 캠퍼스

진짜 문제는 페이스북 경영진의 의지였다. 지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페이스북은 비상시에만 사용할 수 있는 'break-the-glass' 수단이 있다. 이건 페이스북의 알고리듬이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를 찾아낸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들이 해결방법으로 제안한 것들이지만 이를 사용할 경우 페이스북의 방문자가 줄어들거나 사용자들의 활동이 줄어들 거라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조치를 가리킨다. 하우겐은 "페이스북이 한 해에 800억 달러를 벌고 싶어 하는데, 이 방법들을 사용하면 약 20억 달러 정도를 적게 벌게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하자. 이걸 누가 결정하는가? 페이스북과 주주들이다."

그렇게 큰 수익을 낼 뿐 아니라 우수한 엔지니어들을 보유한 기업이 "시민사회 보존"이라는 거창한 부서를 만들고 고작 200여 명을 배치했다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할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문제의 해결책이 기업의 수익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애초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하우겐에 따르면 알고리듬 변화를 통해 페이스북의 세션이 1% 증가하는 대신 허위정보가 10~20% 증가한다면 그걸 선택하는 기업이 페이스북이다. 허위정보는 사회가 떠맡으면 될 문제이고, 수익은 기업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의회 난입사태의 책임

결국 페이스북은 2020년 선거를 앞두고 몇 가지 비상조치를 취했다. 물론 허위정보는 난무했고, 미국의 시민사회는 여전히 분열되었지만 적어도 2016년과 같은 (러시아 같은 다른 나라에서 페이스북 사용자 그룹들을 겨냥해서 허위정보를 유포해서 선거 결과를 바꾸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커버그는 선거가 끝난 직후 이 조치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고 한다. 잘 작동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수익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우겐이 속한 시민사회 보존 부서 전체를 해체했다. 선거가 끝났으니 쓸모없는 팀이라는 것. 그렇게 한 직후에 지난 1월 6일의 연방의회 난입사태가 일어났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폭도가 의회를 점거하고 트럼프의 반대파 의원들을 잡아내겠다는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이 일이 터지자마자 페이스북은 없앴던 비상조치를 슬그머니 되살렸다.

이 일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페이스북은 사회 분열을 막을 방법을 갖고 있지만,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우겐은 이를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고 본다. 페이스북이 "시민사회를 보존"하겠다는 미션은 자신들의 수익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가질 수 없는 미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의회 난입사태에 대해 "그 일의 책임 그곳에 침입한 사람들에게 있다. 페이스북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absurd)"이라고 반박했다.

과연 그럴까? 하우겐에 따르면 유럽의 정당들이 페이스북에 편지를 보내서 이렇게 호소했다고 한다. "우리가 유권자들에게 좋은 정책을 알리면 페이스북의 알고리듬 때문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반면에 우리가 유권자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발언을 하고 극단적인 정책을 알리면 큰 반응을 얻는다. 당신들의 알고리듬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과격하고 위험한 정책을 취하게 된다." 정당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유권자들은 모두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자극적이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내용이 아니면 도달이 되지 않는 알고리듬을 만든 플랫폼이 책임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알고리듬 거버넌스

부서의 해체로 다른 팀에서 일하게 된 하우겐은 페이스북에서 발견한 내용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큰 내적갈등을 겪다가 결국 언론과 의회, 관계기관에 고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해서 연락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와는 외딴곳에서 만나면서 혹시 모를 추적에 대비해서 폰을 차 안에 두고 야외에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우겐은 "페이스북의 기업 분리는 답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큰 회사가 분리되면 문제를 해결할 자원 역시 잘게 쪼개어지고, 그만큼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자가 "만약 하나의 해결책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라고 묻자 그는 "완벽한 하나의 해결책(magic bullet)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면서 그래도 하나를 선택한다면 투명성(transparency)을 고르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보는지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가 데이터를 공개하면 많은 사람이 덤벼들어 그걸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공론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알고리듬 거버넌스(algorithmic governance)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금융을 은행에 맡겨두지 않고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개입하는 것처럼 소셜미디어의 알고리듬 역시 그 거버넌스를 기업의 경영진에 일임하지 말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상원의 상업, 과학, 교통 위원회는 10월 5일 화요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밤 11시)에 하우겐을 불러 청문회를 개최한다. 여기에서 일정을 확인할 수 있고, 생중계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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