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Cold War II)에서 세계가 새로운 냉전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우려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20세기 냉전이 전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많은 중소국가가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줄서기를 해야 했지만, 그렇게 줄을 선 나라들은 대가로 각종 사회, 경제적 지원과 원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냉전은 우주개발이라는 부산물을 낳았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하면 시도하기 힘든 장기적 투자였지만, 소련의 앞선 우주 기술 과시로 충격에 빠진 미국이 과감한 우주 개발을 선언하면서 두 강대국은 자존심을 건 경쟁을 하게 된다. 물론 로켓 기술은 장거리 미사일 기술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군사 경쟁의 일부이기는 했지만, 두 나라는 단순한 무기 개발을 넘어 달 착륙과 행성 탐사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소련은 1975년, 금성에 무인 우주선을 보내 착륙에 성공, 표면 사진을 찍었다.

한국은 강대국들에 비하면 이 분야에서 많이 뒤처져 있지만 지난 목요일의 누리호 발사는 자체 기술로 엔진 설계, 부품 제작, 발사 운용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비록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올리는 최종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 것을 보면 역시 우주개발은 단순한 경제적 효과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실패에 너그러워진 것을 보면서 누리호 엔진 개발자 김진한 박사가 했다는 "우주는 실패를 용인하는 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신령한 영토"라는 말을 실감했다.

요즘은 로켓 부스터를 아무렇지 않게 착륙시키는 스페이스 X의 실패 역사

우주개발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실패를 한 나라는 미국과 소련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지난 6월에 세계일보에 글을 썼다). 당연히 실패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렇게 실패할 때마다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Space is hard(우주는 어렵다)"라는 말이다. 흔히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을 설립한 영국 갑부 리처드 브랜슨이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스페이스 X의 일런 머스크도 종종 하는 말이고, 미국이 창설한 우주군(U. S. Space Force)이 얼마 전에 공개한 홍보 영상에도 등장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영상에도 등장한다. 오죽 자주 나왔으면 이제 "우주는 어렵다는 말 좀 그만하라"는 기사까지 나왔을까.

미 우주군의 홍보 영상
미 항공우주국의 아르테미스 계획 홍보 영상

"우주는 어렵다"는 말을 리처드 브랜슨이 처음 한 게 아니라면 누가 했을까?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에 미국이 달에 가려는 이유는 "그 일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not because they are easy, but because they are hard)"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고, "우주는 어렵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텍사스 휴스턴, 1962

케네디의 연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당시 미국인들은 소련에 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1960년대만 해도 북한의 국력이 남한보다 강했던 것과 비슷하게 미국은 소련의 우주 기술 발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소련은 1957년에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궤도에 올려놓았고, 1961년 4월에는 최초로 유인 우주 비행에도 먼저 성공했기 때문에 미국인들 사이에는 소련식 엘리트 과학기술 교육에 밀리고 있다는 패배감이 퍼지고 있었다.

유리 가가린이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기 3개월 전인 1961년 1월에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적 자존심을 만회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경쟁자 소련이 해낸 것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었고, 그들이 못한 것,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을 해내야 했다. 인간을 제일 먼저 달에 보내는 것은 미국에 승리를 가져다줄 가장 완벽한 목표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소련보다 기술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게 그 하나였고, (사실상 독재체제였던) 소련과 달리 미국이 크나큰 자원을 달 착륙 프로젝트에 쏟아붓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그 이유를 설득해야 하는 게 다른 하나였다. 많은 미국인이 1960년대를 풍요의 시대로 기억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빈곤선 아래에 있었고, 끼니를 구하지 못해 굶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나라에서 미국인을 달에 보내야 할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련을 이겨야 한다는 말 이상의 논리가 필요했다. 케네디가 1962년 9월 1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했던 연설은 바로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라이스 대학교 스타디움에서 연설하는 존 F. 케네디 (1962)

미국인들이 흔히 'Moon Speech'라고 부르는 이 유명한 연설은 휴스턴 소재의 라이스 대학교(Rice University) 스타디움에서 한 것이다. 지금은 휴스턴은 미 항공우주국의 시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Houston, we have a problem") 1962년만 해도 그 장소는 휴스턴 외곽 바닷가의 빈 땅에 불과했다. 나사는 달 착륙 계획을 위해 장소를 물색하다가 이곳을 선택했고, 이 지역에 땅을 가지고 있던 텍사스의 한 석유회사가 라이스 대학교를 통해 이 부지를 기증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의 달 착륙 계획을 라이스 대학교에서 발표한 배경이다.

"We choose to go to the Moon"

이 연설은 미국인들이 케네디가 했던 최고의 연설 중 하나로 기억하는 명연설이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한 사람 중에도 한 번쯤 읽거나 들어봤을 연설이고, 나도 학생 시절에 일부분을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 연설이 왜 좋은지 알기 힘들었다. 사전을 펴놓고 문장을 해석해야 하는 '공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었고, 무엇보다 케네디의 연설은 영상으로 보지 않으면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케네디는 흔히 "첫 번째 TV 대통령"으로 여겨질 만큼 영상을 통한 전달력이 뛰어났다).

당시 미국이 비록 소련과의 경쟁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1960년대는 미국이 처음으로 여러 방면에서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국내적으로 여전히 많은 문제가 쌓여있었고, 사회가 분열되고 있었지만, 당시 영상을 보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가 (적어도 백인들 사이에서는) 강하게 느껴진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케네디를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케네디로 대표되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지 모른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의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케네디는 상승하는 국력을 낭비하지 않고 훌륭한 투자를 한 것이고, 그 투자를 위한 대국민 설득 역시 뛰어났다. 참고로, 이 연설문의 작성자는 케네디의 수석 연설문 작성자였던 테드 소렌슨(Ted Sorensen)이다. 24세의 나이에 상원의원이던 케네디의 연설문 작성자가 되었고, 케네디가 암살당한 후에는 동생 로버트 케네디의 대선 출마를 도왔다.

("Space is hard"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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